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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Dec 20. 2023

과묵한 남자

첼로와 아버지

아, 잘 보셨습니다. 아들이 저를 닮아 말이 없어요. 전 과묵한 성격입니다. 한마디 하기까지 생각을 많이 해요. 남자 말 많으면 사실 좀 가볍게 보이잖아요. 진우가 절 닮았어요. 조용하고 진중하죠. 우리 애가 어렸을 때 굉장히 똑똑했어요. 채 세 돌 전에 한글 떼고 숫자, 알파벳도 곧장 알더라고요. 이런 아이는 못 보셨죠? 그러셨을 겁니다. 그때 저희가 작은 섬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동네 주민들도 여지껏 역사가 없는 일이라더군요.  섬이라도 태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 말 상대가 없었거든요. 작은 분교였는데 다른 애들과 수준 차이가 많더라고요. 걔들이 좇아오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예요. 부랴부랴 섬을 나왔습니다. 아주 큰 도시로 갔어요. 거긴 우리 아들 상대가 될만한 애들이 몇 있더군요. 역시 내 아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어요. 무척 뛰어났답니다. 기죽지도 않고요. 공부도 상위권이고 운동이든 뭐든 했다 하면 특출나요. 누굴 닮았냐고? 하하하. 뭘 묻고 그러십니까? 보면 아실 텐데. 그러다 5학년 때 첼로를 켜는 친굴 만났거든요. 호기심에 해본다더니 재밌데요. 뭐 그때야 어리니 악기 하나쯤 정서에 좋겠다 싶어 하는 데로 뒀죠. 세상에, 저는 다 잘해도 음악은 젬병인데 얘 그쪽으로 천재더라고요. 그런데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잖아요. ‘열 재주 가진 놈이 빌어 먹는다’고요. 중학교에 입학하고 악기를 당장 그만두게 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때이기도 하고요. 착하기까지 해서 부모 말을 거역하지 않아요. 댁에 아드님은 어떤가요? 그렇죠. 그 나이 땐 다 반항하는 법이죠. 진우가 좀 특별한 편입니다.


아, 그런데 이 녀석이 고입을 몇 달 앞두고 첼로를 전공하고 싶다지 뭡니까! 펄쩍 뛰었죠. 공불 이렇게 잘하는데 무슨 예술입니까? 전교 석차가 항상 5등 안에 들었습니다. 1등은 못 해봤으니 그렇게 부러운 눈으로 안 보셔도 됩니다. 머리도 좋지만 끈기가 보통이 아니에요. 뭐가 돼도 될 놈이죠. 그런데 갑자기 음악이라니. 집사람도 마찬가지고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단식을 하더라고요. 일주일을 넘어 열흘 가까이 되니. 하... 그 심정 모르실 겁니다. 이런 아들은 안 키워보셨죠? 눈앞에서 자식 죽는 것을 어떻게 본답니까. 져 주었죠. 죽 한 그릇 먹고 당장 연습실로 달려가데요. 무서운 녀석입니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에 연습에 말도 마십쇼.  종일 구부정한 자세로 있으니 어린것이 디스크에, 가스팍은 항상 멍이고요. 안쓰러워 못 보죠. 아이고, 욕심 없습니다. 저 좋아하는 것 하고 살면 그만이죠. 어, 저기 애들 나오네요. 오늘 많이 듣고 배웠네요. 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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