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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Dec 19. 2023

글쓰기 좋은 날

면접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에 글쓰기 반 회원들을 만났다. 광양 유당공원. 빙 둘러서서 인사를 나눴다. 총무님이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다들 이름 앞에 붙일 것이 있다. 내 앞엔 무엇을 갖다 놓을까. 목포에서 온 아줌마?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이 왜 양선례 선생님한테 미안한지 모르겠다.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걱정되고 궁금하다. 염려가 무색하게 선생님은 내가 한 시덥잖은 농담으로 나를 멋들어지게 포장해주었다. 국민 사회자라는 유재석 같았다.     


아이가 넷이니 뒤치다꺼리로 궁뎅이 한번 바닥에 붙일 새 없이 바빴다. 전쟁 같던 시간이 지난 요즘, 주부로 눌러앉은 것이 아쉽기도 하다. 혹시,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여러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교육청 학교 폭력 담당과에서 행정 보조를 뽑는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보조라는 낱말이 맘에 든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응시 원서를 작성하고 필요 서류를 준비했다. 난생처음 자기소개서를 쓴다. 잘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 같고,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건 진심이지만 식상하다. 돈 주고 맡긴다더니 이해가 된다. 어렵다.     


9일. 서류전형 발표 날이다. 단절될 경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안 뽑아 줄 것 같아 기대를 안 했다. 누워서 휴대폰을 하며 저녁 찬거리를 걱정하다가 합격 어쩌고 하는 문자가 화면에 뜬다. 뭐? 벌떡 일어나 안경을 쓰고 다시 읽었다. "황선영님, 서류전형 합격했으니 내일 한 시 40분까지 면접을 보러 오세요."     


저녁 장을 보러 나간 김에 미용실에 들렀다.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일까 깔끔하게 단발로 잘라버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밥을 준비했다. 무슨 잔칫날처럼 거하게 차려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이를 더 구석구석 닦았다. 물 아까운지 모르고 샤워를 오래 했다. 아이크림을 평소보다 듬뿍 발랐다.     


면접 날.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딸들이 엄마 잘하라고 화이팅을 외치고 갔다. 집안일을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심장이 빨리 뛴다. 예상 질문에 답을 써 보았다. 거울 앞에 가 섰다. 쑥스럽다. '안녕하세요? 황선영입니다.'를 말했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내 얼굴을 똑바로 못 보겠다. 눈을 감고 말을 했다. 웃겼다. 열두 시. 씻고 화장했다. 오늘따라 팍삭 늙어 보인다. 잔주름이 자글자글하고 기미가 더 올라왔다. 아껴 둔 자켓을 꺼내 입었다. 팔뚝이 쪼인다. 한 시 10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다. 케이비에스 라디오 클래식 에프엠을 켰다. 혼자서 이 말 저 말 해 보았다. 혀가 꼬인다.     


한 시 30분. 4층까지 계단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담당자가 대기실로 안내했다. 곧 다른 서류 합격자도 왔다. 환하게 젊고 이쁘다. 똑똑해 보이기까지 한다. 위축된다. 상대가 안 될 것 같다. 순서를 뽑았다. 나는 관리번호 2번. 1번이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내가 들어갔다. 면접관 앞에 앉았다. 텔레비전에서 본, 출연자에게 독설을 날리는 무서운 심사위원을 생각했는데, 인상도 좋고 친절하였다. 나는 큰 죄라도 지은 사람같이 벌벌 떨었다. 질문에는 염소 목소리로 헛말만 뱉었다. 뇌가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사장이라도 나를 안 뽑을 것 같다. 그래도 콧구멍만 한 희망을 품어 본다. 월급 받으면 남편 다 줘야지.     

11일.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이 틀렸나 보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합격자 발표가 올라와 있다. 클릭. '최종 합격자 관리 번호 1번.'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뻔한 말을 한다. 다 경험이네 어쩌네 하면서. "듣기 싫어. 끊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올라오는 감정에 몸을 맡기고 느꼈다. 그리고 일어나 노트북을 열었다. 이때다. 지금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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