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국화

괜찮아도 괜찮아

국화와 도경수

by 황옹졸

어딘가 뻐근한 것 같아 목이랑 어깨를 주무르고 팔다리 스트레칭도 했다. 그래도 여전하다. 마음이 뭉쳤나.


용건도 없는데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이 있는가를 떠올리니 국화만 생각났다. 그런데 우리 사이의 깊이에 비하면 통화가 잦지 않다. 휴대폰 기록을 보니 한 달에 한 번 꼴이었고 시간은 3분 남짓이었다. 카톡도 용건 있을 때만 한 달에 두어 번. 가깝지만 일상에서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국화 번호 끝자리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살짝 터치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무슨 일로 바쁠까. 아이들 하교 시간이라 데릴러 갔을 수 있겠다. 아니면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는 중이거나. 수술한 허리가 다시 말썽을 일으켜 아픈가? 지난번 만났을 때 상체를 완전히 감싸는 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치료하고 회복하느라 얼마나 보대꼈는지 많이 야위기도 했다. 손바닥을 허리에 대봤다. 예쁘고 항상 웃고 있지만 살은 딱딱한 바비인형 같았다. 큰 눈은 더 동그랗고 그렇잖아도 얇은 허리는 더 잘록하고 긴 다리는 가늘어 힘이 없어 보였다. 어서 완전히 다 나아야 할 텐데. 그래야 나랑 많이 놀아 줄 것인데. 미지근한 잡념에 빠져 운전대를 잡았다.


네비에 '국화'라고 뜨며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말을 쏟아낼 준비, 입술 오므렸다 펴기를 두 번 실시했다.

"아주머니, 바쁘신가 봐요?"

국화가 까르르 웃으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며 허리가 어떤지 물었다.

"허리? 괜찮아. 이게 극적으로 나아지는 건 아니고 서서히 좋아지는 거라. 전에 비하면 얼마나 건강해, 너무너무 감사하지. 뭘 더 바라. 이번 주는 보호대 풀고 예배 다녀왔어. 이제 맨몸으로 생활해야 해. 걱정 마, 선영아. 나 이제 정말 괜찮아. 너는? 너는 어때, 아픈 데 없어?"


통화 횟수가 적고 통화 시간이 짧은 이유를 깨달았다. 국화는 항상 괜찮다고 한다. 허리가 아파도 괜찮고 돈이 없어도 괜찮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아이가 아팠을 때도 견딜 만한 고통을 주셨을 것이니 감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감당했다. 괜찮으려고 말을 아끼는 것이다.


일상이 허들 경기 같다. 옆을 보면 다들 부드럽게 잘도 넘는다. 나도 질세라 따라 뛰어보지만 가랑이가 진짜 찢어질 것 같다. 어쩌면 모든 장애물을 온전히 넘은 적은 없고 모두 걸려 엎어졌는지도 모른다. 국화한텐 괜찮다고 했지만 오늘도 허들을 하나 앞에 두고 몸이 경직되어 전화를 했던 것이다. '국화야, 장애물이 너무 높아, 가랑이가 찢어지면 아프고 창피해서 어떡하니, 포기하고 뒤로 갈까? ' 국화의 괜찮다는 말, 넘지 못한 부끄러움도, 다리가 아픈 것도, 넘어져 포기하는 것도 다 괜찮으니 괜찮다는 근육 이완의 약과 같은 말을 듣고 싶었다. 앵무새처럼 국화의 말을 따라 말하며 엑셀을 세게 밟았다. "괜찮아, 감사해."


도경수가 노래한다. <괜찮아도 괜찮아(That's okay)>

https://youtu.be/j2aQ_NqeTNw?si=O18M-KJ6QoU0CMW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거리에서 채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