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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리는 어머니

by 황옹졸

먼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간 친구가 만선을 했다며 택배를 보내왔다. 넓고 기다란 스티로폼 상자를 감은 유리테이프를 벗기고 뚜껑을 여니 은박지 옷을 입은 것 같은 갈치가 누워있다. 감지 못하고 동그랗게 뜬 눈의 눈동자는 새까맣지만 맑았으며 '허' 벌어진 입은 생전 못다 한 말이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꼬리를 잡고 한 마리를 일으켜 도마에 놓았다. 키가 도마를 훌쩍 넘어선다. 초롱한 눈이 날 자꾸 쳐다보는 것만 같아 시선을 피했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 평생 눈을 감지 않는다. 세상 풍파에 눈 한번 질끈 감을 찰나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생이라는 것이다. 나는 무슨 권력으로 이 친구의 내장을 빼내 토막을 쳐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작은 난경에도 눈을 감고 모른 척을 일삼는 비겁한 인생이다. 비장한 갈치의 얼굴 앞에 무안해져 다시 꼬리를 잡아 일으켜 상자에 넣었다. 뚜껑을 닫고 유리태이프로 칭칭 감았다. 저쪽에서 싸우자고 달려든 것도 아닌데 패배자가 된 것 같다.


상자를 트렁크에 싣고 150km를 넘게 달렸다. 너른 수돗가가 있는 곳에 다다라 생선의 관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 거실에서 낮잠에 빠진 어머니를 흔들었다. 이 분이라면 이걸 해체하여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 자기의 안위가 아니라 새끼를 위해 세상 앞에서 자존을 깎을 수 있는 유일한 이. 맑았던 눈과 빛나던 갑옷은 스러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의 뒤에서 눈을 감고 있지 않은가. 비몽사몽이지만 활짝 웃어 보이신다. 수돗가로 어머니를 잡아끌었다. 뚜껑을 열어 안에 물건을 보였다. 소리 없이 도구를 챙기신다. 너른 비닐과 목장갑, 가위, 도마와 칼. 시멘트 바닥에 아무렇게 앉아 오른손엔 가위, 왼손으로는 갈치를 잡고서 삐죽 내밀어진 갈치의 입부터 끊어내듯 잘라낸다. 그리고 긴 꼬리와 옆 지느러미를 잘라 버렸다. 이 작업을 다 마치고 갈치의 옆구리를 칼로 그어 칼끝으로 내장을 긁어낸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느냐며 오느라 피곤할 터이니 들어가라고 나를 밀어낸다. 들어가 소파에 움츠리고 누웠다. 물고기의 까맣지만 맑은 눈들이 가까이 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피하지 않고 계속 마주하다 잠이 들었다.


돌아갈 채비를 했다. 어머니가 묵직한 통을 내민다. 네모반듯한 갈치 토막 위로 굵직한 소금이 뿌려져 있다. 어서 가지고 가라고 또 떠민다. 나는 먹을 자격이 없으니 어머니 다 드셔야 한다고 나직이 뱉었다.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를 들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작은 양판을 꺼내 보여준다. 아까 그 갈치의 것으로 보이는 대가리가 잔뜩 모아져 있다. 굵직한 소금 한 알이 검은 눈동자 위에 떨어져 있다. 소금이 들어간 눈이 얼마나 아플지 몸서리가 나 눈을 감아버렸다. 어머니는 대가리면 충분하다며 크게 웃는다. 이 말은 진실처럼 들린다. 자식에겐 살만 주고자 자신은 뒤로하는 희생이 아니라 모든 달려드는 눈들에게 겁내지 않는 인생 고수의 자신감과 여유다. 나도 삶이 숙련이 되면 어머니처럼 갈치의 눈을 당당히 마주하고 대가리를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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