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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Jan 12. 2024

바쁜 사람

지음이가 졸업했다. 제 아빠를 많이 닮은 아이다. 숱 많고 두꺼운 머리카락, 넓은 이마, 처진 눈썹과 눈꼬리, 하얀 피부, 높은 자존감.




두 살 아래 동생보다 한글과 숫자를 늦게 뗐다. 그래도 전혀 기죽은 기색이 없다. 모든 글자를 척척 읽어 내는 동생을 보며 "우와, 너 진짜 잘한다!"라고 박수를 치며 폭풍 칭찬을 했다. 자극받아 저도 알고자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리모컨을 동생 손에 쥐어주며 "지언아, 뽀로로 5번이래. 틀어."라며 부려 먹었다.  남 잘하는 꼴, 보기 힘든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이해가 어렵다.


넷 중 성격도 가장 요란하다. 위로 두 오빠는 남자아이들 치고 얌전하게 자란 편이다. 한번은 팔팔 끓는 물을 금방 넣은 컵라면을 거실 탁자에 올려놨는데 목욕하다 도망 나와 활개치고 다니다 그 뜨거운 데 앉아 버렸다. 응급실로 달려가니 의사가 웃는다. 항문은 화상 입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엉덩이가 홀라당 까진 채로 긴 여름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뒤로도 여러 번 데이고 부러지고. 한국병원 응급실 구조가 빠삭하다.  


시도 가만있을 줄 모르고 몸과 손을 계속 놀린다. 손끝이 얼마나 야무진지 1학년 때 스스로 뜨개질을 시작했다. 할머니가 하는 것을 보고 다이소에 가 직접 실을 사다 영상을 몇 번 보고는 자기 목도리를 떠서 두르고 다녔다. 3학년 땐 눈썹을 싹 다 밀고 빨간 볼펜으로 그린 일도 있다. 팔다리 털도 다 없앴다.  맨날 무엇을 그리고 오리고 붙인다. 패션쇼를 하다 급기야 옷을 만든다고 온 식구 것을 난도질을 해 놓기도 했다. 한동안은 삼향천 도둑고양이들의 엄마가 되어 집에 우유와 참치를 몽땅 가지고 나갔다.


중학생이 되면 좀 얌전해지려나. 요즘은 공부한다고 수선을 떤다. 일주일새 책상도 두 번이나 옮겼다. 집중이 잘 되는 곳은 찾아. 문제집을 산다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놨다. 다 풀 수 있겠냐고 물으니 걱정 말란다.





졸업식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다.

"엄마는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예수님 믿고 살면 되지."

"엄마, 나 크면 바빠서 교회 못 가."




지음이가 태어나 사는 게 더 풍성했던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로

재밌는 세상을 알려줄지 기대된다.



육아가 끝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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