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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Feb 03. 2024

딸 가진 엄마

설을 쇠고 있다. 엄마와 동생 가족이 우리 집에 왔다. 다음 주 설에 시골 가는 게 힘들 것 같아 미리 모였다.


우리 모녀는 편하지 못한 사이다. 5학년 봄에 엄마랑 떨어졌으니 30년이다.  어린 우리는 우리대로 젊은 엄마는 엄마대로 어려운 시간을 지났다. 서로 애쓴 것을 쌤쌤으로 쳐서 그런지 우리는 말이 없다.


동생은 조퇴하고 출발해도 오후 늦게나 도착한단다. 엄마도 그때쯤 맞춰서 오겠다고 하시고.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깨 일을 보고 나오니 문자 알림 소리가 난다. "나 가고 있어. 8시, 터미널 도착." 맘이 달라지셨군. 꼼짝없이 하루를 엄마와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 아득하다. 동생한테 카톡을 보냈다. "좀 빨리 올 수 없어?"


터미널 가는 길. 남들도 명절을  지내는지 도로가 복잡하다. 터미널 앞에 가까스로 차를 댔다. 엄마가 저만치서 빠르게 걸어온다. 또 바리바리 챙겨 왔는지 양손이 무지 무거워 보인다. 허벅지가 더 가늘어지고 무릎이 약간 주저앉았다.


차 안을 대파 냄새가 매운다. 이 묵직한 매운 내가 늘 엄마를 따라다닌다. 사는 고장이 산지라 온 천지가 대파다. 짐 꾸러미 하나도 대파로 가득하다.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어제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았단다. 좀 썩은 것도 치료하고 때운 것이 자꾸 떨어졌는데 다시 잘 붙어 주었다고 좋아하신다. 돈도 적게 받고 안 아프게 정성으로 치료해 주었다고 말을 늘어놓으신다. 그런 치과 어떻게 알았냐고 나를 세워주면서. 생각엔 엄마 행색을 보고 비싼 치료는 권하지 않은 것 같다. 엄만 가난하기도 하지만 옷 사 입고 치장하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다. 오로지 마음의 진심은 음식. 건강하게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이 당신 인생 최고의 철학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맛없다는 설득력 없는 논리를 펴니 우리는 지지해 수가 없다. 떨어진 시간만큼 입맛의 차이도 큰데 엄마는 전혀 인정을 주지 않는다. 차려 밥상을 맛있게 먹어 적이 없다. 먹냐고 물으면 애쓰고 했을 생각에 차마 맛없다는 말은 하겠다.


만들어 온 반찬을 냉장고 넣으신다. 힘든 설이 되겠구나.


그러곤 곧장 걸레를 빨아 든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눈이 안 좋다면서도 곳곳에 묵은 떼는 귀신같이 찾아낸다. 싱크대, 냉장고, 창틀, 침대 밑, 화장실 물때, 현관 먼지며 구석구석 찾아다니신다. 전에 내버려 두라고 짜증을 섞어 말했는데 요즘은 보고만 있는다. 나중에 엄마 나이가 돼 더 이상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게 되면 무척 쓸쓸할 것 같다. 집안이 한결 환해 보인다.


"엄마, 딸 가진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죽는대."

"응, 그란다 하드라."

웃을 줄 알았는데 대답 소리가 사뭇 진지한다.

"아들 엄마는 경비실인가, 현관인가? 아무튼 그 앞에서 디진다 하드라"

"그래도 딸 가진 엄마가 낫네. 안에서 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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