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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Jan 22. 2024

믿는 구석

고맙습니다


수요일이 아버지 생신인 걸 깜빡했다. 새끼들 졸업을 연달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랑이 위로 가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나와 자식을 다 사랑한 다음에 부모님 생각이 나니 말이다. 토요일이 서야 지나간 일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핑곗거리 삼을 말을 만들어 전화했다.


"선영이냐? 아빠여."

내 시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스물세 살에서 마흔세 살이 된 지금까지 이렇게 전화를 받는다. 당신이 꼭 내 아빠가 되어주겠다는 의지를 표하는 것 같다. 주변이 조용하고 좀 가라앉은 목소리길래 어디시냐고 물으니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아니 왜 이런 중한 일을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이제야 알리시냐고 되려 내쪽에서 화를 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도 않고 말이다. 너무 미안하면 화가 난다. 왜 만날 나는 미안해야 하는 일만 저지르는지.


어머니 번호를 눌렀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신다. 수술도 아니고 간단한 시술이라 끝나면 연락하려고 했는데 웬 수선이냐고 하신다.  허리가 조금 문제라고. 보통 아파서는 병원에 안 가실 어른들이다. 많이 앓으셨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난다. "아빠 걱정하지 말고 애들이나 잘 봐."


요즘 맞벌이 아닌 집이 없더라. 내 주변에서도 직업 없는 여자를 거의 못 봤다. 이런 세상에 나는 결혼하고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오로지 아이들만 키웠다. 신랑이 잘 벌어서? 전혀. 남편은 한동안 학생일 때도 있었다. 이건 순전히 내 불안증 때문이다.


엄마는 사람을 믿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을 여기저기에 맡겼다. 양쪽 할머니, 삼촌, 이모, 고모, 동네 아줌마 아저씨까지. 우리 집보다 깨끗하고 맛있는 반찬이 나왔지만 불편했다. 아무리 잘해줘도 그 집 식구가 될 수는 없다. 그쪽에선 눈치를 안 줬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많이 봤다. 시계와 달력을 보며 하염없이 엄마만 기다렸다. 그렇다고 엄마 품이 따뜻했던 건 아니다. 난 그저 내 의견을 내고, 먹고 싶은 걸 말하고 먹기 싫은 건 안 먹고 싶었다. 종일 단정한 자세와 표정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존중받는 자유가 필요했다.



사람을 믿는 게 어렵다. 누구 손도 빌리지 않고 내가 해야 했다. 아이들 옆에 있고 싶었다. 엄마를 기다리다 울다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내 어렸을 때가 되살아괴로웠다. 돈 없는 불안보다 이게 컸다.



믿는 구석이 없었다면 애들 옆에 있지 못했다. 부모님. 남편을 낳으신 분. "애들 잘 있냐? 뭐에다 밥 먹고 사냐? 애들 잘 봐라." 20년째 들어도 질리지 않고 좋다. 내가 얼마나 못 미더우면 애 잘 보란 소릴 맨날 하겠냐만은. 쌀, 김치, 된장, 간장,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웬만한 양념거리는 사 먹어 본 일이 없다. 부식도 많이 갖다 먹는다. 애들한테만 집중하게 다 마련해 주니 굶지 않고 살았다. 그렇다고 애를 잘 키운 것도 아니다. 진짜로 옆에만 있었고 눈으로만 봤다.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가 휴게실로 나왔다. 울상을 지으니 내 등을 토닥여 주신다. 아빠 손이 까칠하고 쭈글쭈글하다. 내 젊고 통통한 손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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