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옹졸 Mar 15. 2024

황옹졸입니다

허세와 옹졸



동생네가 왔다. 모처럼 두 식구가 함께 외출하는 길이다. 스타벅스부터 들르기로 했다. 나는 커피를 안 마셔서 특별한 카페 취향은 없는데 얘는 꼭 여기 것만 먹으려 든다. 커피 맛도 다르고 혜택도 많다나. 모두에게 마시고 싶은 걸 묻는다.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주문했단다. 참 뭐든 간단한 세상이다. 집 근처라 금방 도착했다. 차에서 마실 거라며 나한테 찾아 오란다. "언니, 황허세로 주문했어!" 내리는 내 뒤통수에 크게 소리친다. 문이 곧 닫히고 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질 못했다. "황허세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아까 외치던 말이 저건가 보다. 직원에게 가니 우리가 고른 음료가 맞다. 멀쩡한 이름 두고 이런 이상한 별명은 뭐람. 재미는 있네. 자기 성격이랑 딱 맞게 잘도 지었다. 양손 가득 마실 것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황허세'라. 입과 머릿속에 맴돈다. 마침 쓸 만한 필명을 연구하던 참이다. 쥐뿔도 없는 인생 허세라도 부려 볼까? 방학 동안 황성훈 선생님을 따라 '브런치 스토리'에 도전했다. 내친김에 '북스타그램(책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시작했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내 글은 전혀 인기가 없다. 우리 글쓰기 반 선생님들은 재밌다고 했는데. 인스타그램은 팔로워가 900명이 넘는다.     



"야, 그 이름 나 주라."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실실 웃는다. "언니는 허세가 아니야." 그럼 뭐냐고 물으니 화 안 낸다고 약속하면 말한단다. 손도장 찍고 사인까지 했다. "언니는 옹졸." 운전하는 남편, 조주석에 탄 제부, 뒷자리 애들이 맞장구를 치며 박장대소를 한다. 나도 눈은 째려보고 있지만 웃음이 난다. 찔리는 점이 있다. 남편은 사기 결혼을 했다면서 입을 뗐다. 잘 웃고 까불길래 성격 좋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색하고 속이 좁아 사는 게 피곤하다나. 두 아들도 거든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 우리 집은 북한이나 다름없었다고 쏟아냈다. 핸드폰을 늦게 가져서 불만이 많았다. 사 주곤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했다. 지켜야 할 온갖 것을 벽에 써 붙여 놓고 애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때가 있는데. 독재자 시절이 그립다. 하하. 반박하자면 나는 웬만하면 규칙을 지키는 게 좋다. 기준이 없으면 만들어 놔야 불안하지 않다. 제부는 자기 딸을 안 봐줘서 서운하단다. 넷을 낳았다고 아이를 좋아할 거란 오해는 말아 달라. 세상에서 애기랑 노는 게 제일 재미없다. 그래도 자식은 예뻤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 동생은 지금도 조카들을 물고 빨고 한다. 출산 때마다 휴가를 다 써가며 수발 들러 왔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뭐 형편이 그렇기도 했지만 마음이 우러나지가 않아서. 똥, 오줌 가리면 봐 주겠다고 했다. 검색창에 '옹졸하다'를 넣었다.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다.'라고 나온다. 옛날 같았으면 발끈하고 한바탕했을 텐데 요사이 인정하고 내 구겨진 면을 보는 게 좀 쉬워졌다. 글쓰기 치료 덕인가? '브런치 스토리', '인스타그램' 이름을 '황옹졸'로 바꿨다.             


   

점심 값과 볼링비를 두고 사다리타기 게임을 했다. 각 가정의 대표가 나섰다. 메뉴는 나주 채선당 샤부샤부 뷔페. 휴일 점심이라 인당 2만 원쯤 할 것이다. 초등학생은 좀 싸다 해도 수가 아홉이나 되니 밥값이 만만치 않다. 꼭 볼링비여야 한다. 와우, 내 바람대로 됐다. 기분 좋다. 나주까지 가는 길도 즐겁고 오랜만에 먹는 샤부샤부도 맛있다. 거의 먹어 가는데 남편이 안 보인다. 후식 가지러 갔구나 생각하고 겉옷을 챙겼다.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어 식탁을 살폈다. 계산서가 안 보인다. 이 인간이 또 착한 척하러 갔고만. 아니나 다를까 미소를 머금고 걸어온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계산했냐니 고개를 끄덕인다. 왜 규칙을 안 지키냐고 이빨을 꽉 물고 물었다. "우리 집 식구가 더 많잖아." 아니, 그 사실을 누가 몰라? 동생은 형부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지켜보던 막내의 말이다. "엄마, 옹졸하게 왜 그러세요."

작가의 이전글 커피 때문이라고 해 두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