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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Mar 04. 2024

커피 때문이라고 해 두죠

사랑하려면



엄마가 싫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도저히 입으로는 뱉을 수는 없어서 말이다. 진작에 좋은 사람 같은 게 되는 건 포기했지만 입으로 시인하는 건 쉽지 않다. 사회적 체면 그런 것 때문인가? 글로 쓰면 체면이 덜 손상되기라도 하는가? 죽을 때나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 남은 날을 가볍게 살라는 신의 사인일 수도. 엄마는 서른을 갓 넘기고 과부가 되어 두 딸을 키웠다. 세상이 말하는 가련하고 박복한 여자, 또는 장한 어머니. 그건 그거고 싫다. 엄마를 사랑하지 못해서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엄마는 아나 모르겠다. 나에게 딸이 생길까 무서웠다. 나 닮은 나쁜 애가 태어날까 봐. 또 나도 자식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 두렵고.



그렇다면 왜 싫은가? 1번부터 100번까지 번호를 매겨 써도 금방 채울 수 있다. 그런데 그 1번. 내가 이렇게 된 시발점. 그걸 모르겠다.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다섯 살. 여기. 이쯤에서부터 기억이 난다. 과자 이름을 말하면 주인이 물건을 갖다 주는 그런 점방에서 아빠가 새우깡을 사줬다. 여섯 살, 할머니가 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기억하는 첫 번째 빨강이다. 엄마는 없다.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서 떼기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자라서면서 불필요하게 부른 질 않았다. 엄마가 엄마여서 엄마인 게 아니라 “자, 1학년 1반 선생님을 소개하겠어요. 여기 임현택 선생님이 담임이세요. ” 이렇게, “여기 황선영의 엄마, 강금단 씨예요” 이런 느낌이다. 


일곱 살, 엄마가 보인다. 아빠가 죽고 처음 맞은 겨울이다. 그땐 지금보다 춥고 눈도 흔히 많이 내렸다. 봄이 오기 직전까지 눈이 온 마을을 덮었다. 우리 집은 외딴 데라 사람과 왕래가 더 없었다. 꼼짝없이 엄마랑만 지내야 한다. 아빠가 보고 싶은 시련보다 이게 더 컸다. 단둘이 있는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 아래 쟁반에 병에 담긴 커피 가루와 프리마가 있다. 설탕은 봉지째 그대로 놓였다. 보온병도 있었는데 요즘 날씬한 정수기보다 훨씬 컸다. 엄마는 그걸 종일 몇 번이나 정성스럽게 타서 마셨다. 나는 처음 맡아보는 그 생소한 커피 향이 너무 싫었다.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 마루와 방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엄마는 정신 사납다고 가만히 좀 있으란다. 겨우내 시달렸다.      



이 작은 동네에도 한 집 걸러 한 집에서 커피를 판다. 주변에도 중독자들이 많다. 세상에 엄마들만큼이나 사랑받나 보다. 커피를 못 마신다. 이걸 먹을 수 있으면 엄마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몇 번 시도했는데 여전히 냄새가 싫고 머리가 아팠다. 엄마가 싫은 첫 기억은 커피부터지만 출발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궁금하지만 이제 와 그게 뭐 중한가. 그냥 커피 때문이라고 해 두자. 그래, 엄마를 사랑하면 커피를 먹을 수 있을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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