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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Aug 17. 2024

따뜻한 이야기

아버지, 어머니

밤 열 시가 넘어 도착했다. 집안 불이 다 꺼져있다. 남편은 아무 조심성 없이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 형광등 스위치 두 개를 다 눌러 거실을 환하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누워 계시다 부스스 일어나며 눈을 찡그리더니 이내 웃으시며 저녁은 먹었냐고 묻는다. 남편은 출출하니 누룽지라도 끓어 먹자고 한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안방으로 갔다. 두 분이 몇 년 전부터 떨어져 주무신다. 문고리를 꽉 잡고 살살 밀었다. "선영이냐?" 잠귀가 밝으시네. 자다 깬 목소리지가 맑다. "아빠 좀 일으켜라." 일어나기 쉽게 손을 잡고 팔을 잡아당겼다. 낮에 일을 많이 하셨나 보다. 몸이 뻣뻣하다. 거실에 둘러앉았다. 혼자 따라온 지음에게 눈을 안 떼고 질문 폭탄이 쏟는다. 방학에 뭘 하며 보냈는지, 개학은 언제 하는지, 오빠랑은 이제 안 싸우는지, 공부는 잘하는지. 어머니는 다시 이불로 들어가셨고 우리는 그 앞에 상을 펴고 누룽지를 먹었다.


'쿠쿠가 증기 배출을 시작합니다.' 밥 냄새와 살짝 비릿한 생선 조림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그나저나 지금 몇 시인가? 머리맡 핸드폰을 집어 눈앞에 댔다. 다섯 시 50분. 식욕이 사그라들고 잠이 맛있어졌다. "지성 엄마야, 밥 먹자." 옆에 누워있던 남편이 먼저 일어난다. 나도 눈곱을 떼고 상 앞에 앉았다. "이삭 거름 주러 가야 혀서, 일찍 먹자." 거름 주는 일이 없었더라도 밥 먹은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농촌의 아침은 지금이 몇 시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해가 조금이라도 기척을 하면 하면 농부는 서둘러야 한다. 이 시간에 밥은 안 넘어갈 것 같았는데 깻잎 한 장을 잡아 밥 위에서 얹어 먹으니 자던 입맛이 모두 깬다. 새벽부터 진수성찬으로 먹었다. 게장, 갈치조림, 깻잎 김치, 고구마 순 김치. 그리고 정성으로 다린 것 같은 시원한 보리차. 먹고 치우는 사이 남편과 아버지는 논에 갈 채비를 한다.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 나가야 한다며 바쁘게 움직인다. 아, 농부여.


"선영아, 오늘 빠쁘냐, 혹시 시간 나면 아빠 운동화 빨아주라. 아니, 시간이 나나 안 나나 좀 빨아야 쓰겄다. 내일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데 신발이 영 거시기 하네. 미안하다이." 나는 오늘 5년 후면 80이 되는 남자는 뙤약볕 아래로 일을 보내 놓고  에어컨 바람 아래 차려주는 밥을 먹고 책을 읽다, 티브이를 보다, 핸드폰을 하는 일정이 있다. 미안한 건 나라고, 운동화 열 켤레, 백 켤레를 빨아도 내가 더 미한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곧장 수돗가로 갔더니 남색, 구멍이 숭숭 뚫린 운동화가 놔져 있다. 손으로 드니 가볍디 가볍다. 손수건 한 장 빠는 일보다 쉽게 끝났다. 볕이 가장 뜨거운 데를 찾아 운동화를 널었다.


거실은 시원한다. 복숭아 하나를 잘라 먹으며 '유퀴즈온더블럭'을 보았다. 11시쯤 아버지와 남편이 돌아왔다. 땀에 완전히 절여진 몸이다. 얼굴이 벌거면서 까맣다. 몇 시간 만에 반쪽이 되었다. 얼른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대령했다. "운동화 빨았네? 애썼다." 관절이 오그라든 까맣고 뭉뚝한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머니가 점심은 밥 하지 말고 콩국수나 사 먹고 오자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뚱땡이 고모'와 '명숙이네 엄마'한테도 전화해 같이 가자며 한다. 가는 길에 두 분을 태웠다. 뚱땡이 고모는 아버지 초등학교 친구인데 지금까지 한 동네에서 지낸다. 부모님 인생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서 고모라고 부른다. 진짜 이름은 '박정숙'. 얼마나 뚱뚱하길래 뚱땡이인가 싶겠지만 그냥 통통한 보통 시골 아줌마다. 키가 작아 귀여운 몸매가 별명과 잘 어울린다. 나는 이 분을 참 좋아하는데 주관이 뚜렷해서 그렇다. "그 여편네 가면 나는 안 갈 거여." 이렇게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말한다. 모두가 걱정한 나의 넷째 임신을 열렬히 지지해 주었고 지금도 아이들 세뱃돈을 챙겨 주신다. 고모가 차에 탔다. 나를 보더니 지성이 엄마 왔냐고 돈을 내민다. 나도 손을 뻗어 고모 손을 잡았다. 그리고 서로 꽉 힘을 주었다. 그리고 눈으로 말하지, '잘 살고 있지?', '네, 잘 살아요.' 온통 초록인 논길을 달린다. 오늘은 풀 잎사귀 하나 움직임이 없다고, 저 집 논은 왜 저렇게 피가 많냐고, 올해 콩 농사는 다 망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셨다. 나는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켜 어른들이 주고받는 소릴 녹음했다. 이런 날이 몇 번 안 남았을 것 같아서. 가만히 들어보면 지나가는 한마디에 인생의 철학과 지혜와 우리는 구사할 수 없는 유머가 있다. 


모두가 콩국수를 먹을 때 나는 라제비(수제비와 라면의 만남)를 시켰다. 


아주머니들을 집에 모셔다 드렸다. 아버지 놀러 갈 때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며 가서 두어 벌 사 오라고 한다. 그냥 다 같이 가자고 하니 "아이고 얼굴이랑 팔뚝이 이렇게 시커매서 어디 시내를 가겄어. 느네가 가서 이쁜 걸로 사와." 우리 어머니는 은근 외모를 중시한다. 남편은 누가 엄마 얼굴 보냐고 핀잔을 하고는 곧장 시내로 갔다. 아버지 어머니는 좋아하는 '코오롱'으로 왔다.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남자들은 의자에 앉고 나와 어머니는 바쁘게 옷을 골랐다. 이것저것을 아빠에 얼굴에 대고 최종 두 개를 입게 했다. 아빠는 탈의실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웃통을 벗으려고 포즈를 취했는데 직원이 깜짝 놀라 달려오며 저기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나도 요즘 부끄럽고 창피한 게 점점 줄어드는 것이 나이 먹은 징조구나 느꼈는데 아버지도 그런 가보다. 남편은 조용히 일어나더니 어슬렁어슬렁 신발 코너를 왔다 갔다 한다. 어머니가 "너도 하나 골라라." 남편은 약간의 망설임인 그냥 하는 소리로라도 괜찮다는 인사 없이 가장 비싼 가격이 붙은 것을 집어 직원에게 사이즈를 말했다. 남자 직원은 남편을 치켜세우며 보는 눈이 남다르다면서 이게 이번에 금메달 딴 양궁선수들이 신었던 것과 거의 같다면서 진짜 좋은 거라고 했다. 거기에 20% 특별세일까지 한다고. 아니, 동네 한 바퀴도 도는 일 없는 사람에게 저렇게 첨단 기능을 가진 신발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무튼 신발은 예뻤고 잘 어울렸다.  가만히 계산대에 올려놓더니 다시 푹신한 의자로 갔다. 아버지가 나한테 바짝 붙더니 "너도 엄마한테 하나 사달라고 혀." 아니라고 필요한 것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원피스 하나도 겁나 이쁘긴 했다. 아버지는 다음에 본인이 사 줄 테니 또 오잔다.


차에 탔다. 시동을 켜자 아버지가 인천 고모가 혈액암이라는 말을 꺼내셨다. 인천 고모가 아빠 바로 위인지, 중간에 누가 있는지 궁금해 나이를 물었더니 80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올해 75살이라고 크게 말한다. "우리 아들 만나고 다음에 선영이 만났는데 진짜 그것만 했는데 이 나이가 돼아부렀어야. 아이고, 우리 선영이. 내가 니 생각하면 맘이 참 짠혀. 아빠 사랑 못 받고 고생하고 컸을 생각 하면. 너 처음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내가 잘해줘야 쓰것다고 마음먹었는데. 촌에 산게로 그것이 맘대로 안 되드라."


잘해주는 일과 촌에 사는 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코끝이 너무 아파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미지근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너무 차가우면 상처고 너무 따뜻한 건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어쨌거나 둘 다 맘에 안 들어, 미지근이 좋은데. 가끔 하나님이 은근한 온기를 경험하게 할 때가 있다. 그게 하필 그게 '시'인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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