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하니?"
"피곤해 죽겠어. 토요일이 더 바쁘다니까. 혜은이 치과에 축구 센터에 조은이도 콧물 줄줄이고. 좀 쉬고 싶다. 언니는 일정이 뭐야? 아, 또 엄마 데리러 가야는 구나. 언니도 귀찮은 일 투성이네."
"제부는? 잘 있고?"
"어어, 옆에. 여태 자. 한 마디 할라우? 오빠, 언니."
"아이고, 냅둬. 무슨 인사야."
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으아아아아아"하는 남자의 절규가 들렸다.
제부는 보험회사 직원이다. 설계에 교육매니저까지. 세상에 미스테리가 많은데 이 사람도 속한다. 얼굴은 잘 편으로 호감형이나 말수가 적어 무겁게 보여 다가가기가 쉽진 않다. 전혀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며 그다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다. 누구에게 친절하거나 다정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크게 웃지도 않지만 화도 없다. 좀 시큰둥하고 무심한 듯한 표정. 이런 사람이 보험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있으며 처자식을 먹여 살렸다는 게 놀랍다. 가족이 된 지 10년. 기본적인 보험은 다 있고 추가로 필요했지만 더 넣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이렇다할 보험 하나를 들어주지 못했다. 일만 많고 돈 안 되는 여행자 보험을 부탁하거나 이런저런 사고가 나면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제부는 일처리가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는 정확한 설명 뿐, 쓸데없는 소리가 없다.
"처형 아버님 꺼 트럭 어제 갱신했어야 했는데 깜빡했어!"
"에? 제부, 뭐라고요? 트럭이 어쨌다고? 그럼 어떻게 해요? 아버지께 전화해서 운전 못 하게 해요?"
"네, 일단 그렇게 하세요. 얼른 사무실 가서 가입할게요."
매해 9월6일은 아버지 트럭, 자동자보험을 갱신하는 달이다. 전화했다.
"선영이냐? 아빠여? 워쩐일이여?"
"아빠 어디세요? 밖에 나가셨어요?"
"잉, 친구 놈이랑 충청도 가고 있는디. 왜?'
"누구 차로요?"
"아빠 트럭. 왜 그러는겨?"
나는 아무 일 아니라고 얘기하고 황급히 끊었다. 괜히 일을 알려서 걱정을 시키면 안 될 것 같았다.
"제부, 빨리요. 아빠 지금 운전하고 있대요."
우리 제부는 흠이 한 가지 있는데 진중한 만큼 오래 걸린 다는 것.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만 봤지, 나오는 건 못 봤으니까.
20분 뒤 동생에게 카톡했다.
"제부 나갔지?"
"아마."
10분쯤 뒤 메리츠화재에서 자동차보험을 가입해 주셔서 고맙다는 메세지 왔다. 제부한테 아침부터 달리기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카톡으로 인사했다. 내가 트럭 계기판 사진을 보냈어야 했는데 그걸 기다리다 제부도 깜박한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처형, 아직 문제가 있어요. 자동차 보험은 '의무보험', '임의보험'으로 나뉘는데 지금 의무보험은 보장이 되는데 '임의보험'은 자정이 넘어야 해요."
"예? 그게 뭐죠?"
"의무보험은 운전 중에 발생한 사고로 상대방 운전에게 발생한 신체, 물적 피해를 보장해요. 임의 보험은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발생한 신체, 물적 피해를 보장하는 거예요. 오늘까지는 조심하셔야 해요."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상상했다. 사고가 나서 아빠와 친구가 피투성이가 된 장면이 지나가고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어마어마한 치료비에 망연자실한 남편의 모습. 너무 끔찍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해서 의무보험, 임의보험을 설명하며 운전을 하지 마시라고 해야 하나 그냥 하나님을 믿고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해야 하나.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그러면 충청도에서 차 없이 집까지 어떻게 오신담. 너무 조심 하느라 긴장해서 안 날 사고도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언지를 안 주었다 사고라도 나면, 아...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건 비극이구나. 여러가지 비극을 상상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15시. 휴대폰 진동벨이 요란하다. 먼저 전화하는 법은 잘 없으신데. 설마가 사람을 잡으려나.
"선영이냐?
"아빠, 괜찮으세요?"
"괜찮지 않으면 뭐. 인자 집에 왔어. 아침에는 왜 전화한 거여?"
"하, 그냥 했어요. 그런데 충청도는 왜 가신 거예요?"
"내가 일일이 매느리한테 보고혀야 하는 겨?"
"하하하."
"우리 새끼들 다 잘 있지?"
상상이 상상에 머물러서 귀찮은 일 투성이인 일상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