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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Nov 13. 2024

쓸데없이

눈물

 


울어야 하는데 이번 주는 그럴 일이 없이 지나가네. 내가 대단한 울보라 말이지. 이번 글감은 심혈을 기울여 얘기하려고 했거든. 거리가 무궁무진하니까. 그런데 뭐가 많아도 문제야. 하나 골라잡기가 너무 어렵잖아. 난 잘 울거든. 부부싸움할 때 제일 그렇고 요즘 운전하면서 '로이킴' 노래 주로 듣는데 그냥 별일 없어도 콧물까지 줄줄이라니까. 넌 안 그래? 울지 않으면 고단한 일상을 무슨 수로 버텨? 아무튼 이번 주는 단단히 작정했는데 물 한 방울이 안 나오고 쓸데없는 생각만 난다.


사실 나는 말로 하는 게 어려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이리 저리 되었다고 정연하게 말을 못 해. 그래서 눈물부터 나오는 것 같아. "공주야, 말로 해야지 그렇게 질질 짜기만 할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시피봐. 동생 챙기고 살라믄 야무져야지. 뚝 그쳐!" 크면서 우리 고모한테 자주 들었던 말이야. 아빠가 살았을 땐  원 없이 울 수 있었는데. 내가 입을 조금만 삐죽거려도 바로 알고 달려와 안아 줬거든. 품에서 속이 다 풀어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있을 수 있었어. 그때 말로 하는 법을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울면 혼나니까 어른들한테 안 들키려고 되게 노력했던 같아. 다 자거나 혼자 있을 때만 훌쩍거렸지. 뭐 아빠 없다고 그다지 서러운 일은 없었는데 보고 싶은 건 못 참겠더라고. 한 달에 두어 번은 베개며 입고 있던 티셔츠가 다 젖었다니까. 1989년 7월에 떠난 뒤로 단 한 번도 꿈에서 본 적이 없어. 진짜로. 꾸긴 하는데 만날 듯 말 듯하는 일만 겪다 깨. 그러면 꺼이꺼이 울지. 결혼하기 전까지 이런 밤이 많았어.
 


연애할 때 말이야, 이 남자가 얼마나 나를 많이 안아 줬게. 운다고, 웃는다고, 이쁘다고, 못생겼다고. 이유도 가지가지야. 그래서 결혼했던 것 같아. 아빠 같아서. 신혼여행 마치고 시댁에서 처음 잔 날이었어. 그날은 뭔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더라. 아버지, 어머니라고는 하는데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고 관계가 희미한 사람이랑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 꿈을 꾸었는데 우리 진짜 아빠가 여기에 날 보러 와서 문을 두드리는데 내가 열 수가 없는 거야. 밖에서 잡아당기고 안에서 아무리 힘껏 밀어도 안 열려. 너무 슬펐어. 난 기억이 안 나는데 자다가 소리 지르고 울었나 봐. 아침 밥상에서 우리 새로운 아빠가 "선영아, 새벽에 뭔 일 있었냐? 아빠랑 엄마랑 방에 들어가 보려다 참았다니까. 부부가 자는 델 함부로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준이가 때린 건 아니지? 그러면 즉시 말혀. 죽여 불라니까."라고 하더라고. 크게 웃었어. 그러고는 차츰 나아진 것 같아. 꿈도 덜 꾸고 보고 싶은 날도 줄고. 그러다 새끼 낳아 키우면서는 잊었어. 맞다, 한동안 남편도 아빠처럼 될까 봐 불안했던 적도 있었네. 이 사람 없으면 누가 날 안아 주냔 말이지. 그런데 이것도 20년 넘으니까 괜찮아지더라. 우리 남편은 나 먼저 가면 좋아할지도 몰라. 전에 '나, 죽으면 재혼할 거야? 절대 하지 마.'라고 했더니 '죽은 사람이 무슨 상관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고 하더라니까. 그런 말이 있다잖아. 마누라 죽으면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웃는다고. 딴 여자랑 살아 볼 생각에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나는 예의상 2년은 울려고. 그렇게 하고 안아 줄 사람을 찾아야지.  
 


중국 소설가 '위화' 알지? <허삼관매혈기> 쓴 사람. 나 요즘 이 작가의 <인생> 읽거든. 한 번 읽어 봐봐. 눈 크고 발 작은 여자가 권했을 때 제목이 별로라 안 읽고 싶었는데 재밌다. '푸구이'라는 노인의 인생 이야기인데 아들, 딸, 사위, 손자를 차례로 잃고 늙은 소와 자기만 남아. 순서를 무시하고 죽음은 찾아오고 비참하고 남루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지니까 또 사는 게 인생 아니겠니. 마지막에 푸구이의 이 말이 아려.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를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 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여태, 죽은 아빠보다 살아 있는 내가 훨씬 힘들고 불쌍하다고 생각했거든. 한 번도 나랑 동생이랑 엄마를 두고 가야 하는 아빠가 끔찍하게 고통스러웠을 거란 걸 몰랐어. 아, 눈물 날 것 같아.


 
책을 팽개쳐 두고 남편한테 갔어. "자기야, 나 좀 안아 줘." 그런데 손을 더듬더듬하네. "아 진짜, 만지지 말고 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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