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절인연(時節因緣)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

by 따청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 사람이나 일, 물건과의 만남, 깨달음에도 모두 때가 있다. 각자의 시절이 무르익을 때 연이 닿는다면 기필코 만나게 된다.


운명론을 믿나요?

개인적으로 운명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사람의 삶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그런데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있기는 하다. 물론 해당 시절이 지나고 또 다른 시절이 되면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삶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연애든 뭐든

한 손에 꼽을 만큼 몇 번 되지 않지만 과거 연애사를 돌아보면 나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한다. 아마 뒤에 다른 글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야 할 타이밍, 좋아한다고 고백해야 할 타이밍, 나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 등을 잘 맞추지 못했다. 이번의 이별도 그 타이밍이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뒤에 급격하게 무너져 버렸다.


연애라고 말 하기는 애매한 이번의 만남에서 딱 하나 타이밍이 좋았던 것은 서로에게 등장할 당시의 타이밍인 것 같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로의 삶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나는 매우 긴 연애의 공백 기간을 가지고 있다. 연애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실상 크게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별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그런 말이었다. 그렇게 그냥 지내다 보면 누군가가 짠 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연애든 결혼이든 못하게 되면 또 뭐 못하는 대로 살아가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A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내가 A의 정보에 대해서 언급할 자격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사실 이렇게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 어쨌든 A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연애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라고 일단 혼자 생각 하고 있다.)


'썸' 보다는 '연인'에 조금 더 가까운

처음에는 각자의 직장에서 업무협조를 하는 관계로 연락을 트게 되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적인 연락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고, 주중에는 한 번씩 미팅을 가지기도 하다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여전히 명함에 적혀 있는 호칭을 서로 사용했지만 한 달 정도 업무적으로 연락을 하다 보니 딱딱한 업무연락에서 부드러운 업무연락을 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계속해서 나와 업무를 진행하던 A였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연락을 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이제 각자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꾸준한 연락을 이어 나갔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이라고 특정 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서로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였을 것이리라.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글에서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끝나면, 그때는 아마도 연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우리 역시 잠시 동안 시절의 인연인 시절인연(時節因緣)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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