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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Apr 11. 2018

사랑의 찬란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2018

사랑만큼 미화된 감정도 없다. 딱 한 번 맛본 기막힌 음식에 대해 수년이 지나도 얼마나 환상적인 맛이었는지 말하며 기억을 미화시키듯, 분명하지 않은 사랑의 감정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이상화한다. 모든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과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간절함이 사랑의 극점이라면 그것은 순간이다. 현실에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의 조각들과 일련의 과정들은 사실 사랑이라고 말하기 조차 부끄러운 마음들이다. 모두가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하지만 순수한 사랑의 감정과 경험은 희소하다. 사랑의 감정을 누리고 경험하는 시간 보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위를 맴도는 시간이 더 길다. 아름다운 사랑을 항상 이야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진짜 사랑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인 것이다.


일 년 중 며칠만 피는 꽃이 더 가치 있어 보이듯, 사랑은 찰나의 순간이기에 찬란하다. 찬란함은 1인칭의 시점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그것은 되돌아보는 미화된 기억이거나 제삼자의 시선이다. 그렇기에 관찰자의 입장에서 당사자의 고통은 미화되어 아름다움에 묻힌다. 꽃이 제 몸을 비비며 고통스럽게 피어나듯 당사자에게 찬람함은 쓰라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찰나의 기억을 미화시키며, 찬란함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을 비현실적으로 펼쳐 그려내면서도 '사랑'이 갖는 찬란함을 일차원적으로 그려낸다. 사랑이 갖는 여러 속성 중 '찬란함'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가 또 있을까. 영화는 감정과 육체의 사랑 그리고 열병 같은 첫사랑을 풍경처럼 보여준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다. 열일곱 살 엘리오(티모니 샬라메 분)는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놀러 온 아버지의 동료 올리버(아미 해머 분)에게 반하고, 사랑에 빠진다. 게이로서 성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엘리오에게는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진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올리버였다. 엘리오는 여자와 춤을 추는 올리버를 질투하고, 소심한 복수를 위해 마르치아(에스더 가렐 분)와 관계를 갖기도 하는 등 모든 생각과 행동의 동기는 올리버였다. 그런 와중에 엘리오의 마음을 알게 된 올리버는 그도 같은 마음임을 엘리오에게 고백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몇 주간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지나 방학이 끝나고 돌아간 올리버에게 시간이 지나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오는 상심하고 슬퍼한 체 영화는 끝난다.

뻔한 퀴어 영화 스토리임에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강한 여운을 주는 이유는 비현실적이지만 사랑의 찬란함을 극대화하고, 아름답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또한,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모두 알지만 영화 속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에 빠져드는 것은, 영화 속 둘의 사랑을 바라보며 자신의 사랑의 기억을 느끼고 미화시키기 때문이다.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사랑'이라는 명사를 다른 동사로 표현한다면 '하나 되다'가 아닐까. 사랑의 본질이 다른 너와 내가 결국 하나 되는 과정과 결과를 의미한다면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는 사랑의 본질을 문장화한 표현이다. '이제 너를 안으면 너를 사랑하는 나를 느끼네'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완전한 사랑 안에서는 내가 너이고, 상대가 곧 내가 된다. 상대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는 감정의 하나 됨을 넘어, 이름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 영혼이 하나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찰나의 순간, 서로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순간, 엘리오와 올리버는 하나 된다. 그것이 비록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으로 영원을 사는 힘을 얻는다. 영화 이후에 올리버가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고, 엘리오가 어른이 되었을 때, 각자의 삶을 살겠지만, 결국 삶의 동력은 서로를 부르는 그때 그 순간일 것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성적 취향과 사랑의 형태를 떠나, 사랑하고 있는 혹은 사랑했던 모두에게 그때의 순간의 경험을 극대화하여 펼쳐내고, 그것을 여름날의 지독히도 아름다운 그림처럼 그려낸다. 80년 대 초반 이탈리아 소도시의 평화로운 풍경과 클래식과 포크 스타일의 음악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붓는다.


나를 바라보는 상대를 바라보며 나를 느끼는 경험을 해 보았다면 영화를 오롯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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