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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May 13. 2016

사랑의 값, <캐롤>

Carol, 2016

영화 캐롤을 보았다. 어느 영화평론가의 만점 평점과 영화를 본 이들의 한결같은 호평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살짝 등장하는 케이트 블란쳇의 아찔한 눈빛.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동성애라는 익숙지 않은 주제와 뻔할 것만 같은 멜로 영화 스멜. 게다가 토드 헤인즈  영화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봐야만 하는 영화가 되어, 타이밍 놓쳐 내리기 전에 얼른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50년 대 초 미국 뉴욕,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테레즈(루니 마라)에게 반한다. 동성애자임을 스스로도 확신하고 있는 캐롤은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남편과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딸이 있는 엄마이기도 했다. 반대로 테레즈는 캐롤 앞에서 여러모로 주눅들 수밖에 없는 경제적, 신분적(?) 약자에 위치해 있었으며, 스스로 동성애에 대한 의식도 불분명한 채 결혼을 구애하는 남자친구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둘 사이의 불꽃 튀는 사랑과 현실적 제약(동성애와 유부녀라는 신분적, 시대적 허들) 속의 갈등 그리고 결국 사랑. 전형적인 멜로 영화이자, 동성애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다.




허나, 이런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캐롤이 영화로서 호평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그만이 갖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것이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의 연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영화로서의 영상미와 촬영기법, 상징미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누구는 1950년대로 시간여행을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한 의상, 분위기, 색감을 극찬하기도 한다.


다 맞는 말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본 후 말라버린 바닷물의 소금 결정체처럼 남은 것은 배우의 눈빛이다. 영화의 두 사람을 동성애의 사랑으로 보든 인간의 보편적 사랑으로 보든 상관없이, 케이트 블란쳇의 눈빛은 압도적이다. 숨 멎을 것 같은 눈빛? 이라는 말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캐롤의 눈빛을 묘사하는 데는 제격이다.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는 카피는 건축학개론 포스터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처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심쿵 하게 만든다. 누군갈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은 현실적으론 가장 무모한 시간이다. 사랑하는 딸을 포기할 만큼 테레즈만 보이게 만드는 것은 진짜 사랑일까. 그 사람만 보이는 그 순간이 정말 진정한 사랑의 순간이고, 그 사람이 사랑의 대상일까.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은 비현실적이고, 환경에 이질적이며,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사랑도 욕망이니, 욕망의 결과로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값일까.



영화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이지만, 테레즈는 결혼하고 싶어 하는 멀쩡한? 남친과 은근슬쩍 다가온 썸남을 버리고 캐롤에게 과감한 걸음을 한다. 캐롤은 사랑하는 딸을 포기하고 테레즈를 받아 들이는 것처럼 끝난다. 영화 이후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 비현실적인 진짜 사랑 이후에 오는 것들은 끔찍이도 현실적인 사랑 이외의 것들이다. 비단 동성애 사랑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진짜 사랑 뒤에는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


영화의 원작 소설의 원제는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이다. 원작을 쓴 하이스미스는 책을 발간하고 한참 후에 원제의 모티브를 성경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타락의 도시 소돔에서 탈출하던 중 뒤돌아 보자마자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내. 영화의 캐롤도, 롯의 아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더 이상 일상으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산 사람이 소금 기둥이 되는 죽음과 같다. 뒤 돌아보지 않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그런 사랑을 하는 것. 그것은 '소금의 값' 이다.


또 다른 의미로,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이 사랑이라면, 그것의 '값'은 '오직 그 사람' 다음으로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돼야, '소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제대로 된, 소금기 있는 짭짤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값'을 지불해야만 한다.


사랑이고, 소금이고, 어쨌든 결국 영화 이후에 남는 것은 마지막 장면. 케이트 블란쳇의 숨 멎게 만드는 눈빛이다. 언젠가 우연히 길가다가 그 눈빛을 본다면 정말 그때가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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