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
본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본 영화를 극장 가서 또 보다니. 그런 적이 없었지만, 근 10년 만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재개봉한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예매를 했다. 갓 스무 살이 된 그때에 무슨 감동과 느낌이 있었는지 기록해 두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싸이월드 메인 사진으로 영화 장면을 해놓을 정도였던 걸 보면 애정이 있던 영화는 분명하다. 오랜만에 친히 극장에 가서 두 번째로 본 영화임에도, 시간이 많이 흘러 그런지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생경함과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좋은 영화란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시작하는 영화"
라는 누군가의 말의 관점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내게 좋은 영화다. 영화를 볼 때는 사랑스럽고, 가슴이 시리고, 허망했으나 영화를 본 이후에는 마음이 무겁고, 이내 덤덤해졌다.
잘생긴 츠마부키 사토시(츠네오)와 넘나 사랑스러운 이케와키 치즈루(조제/쿠미코)의 만남과 끌림은 사랑스러웠다. 츠네오의 입장에서 섹스 파트너도 있고, 이상형의 썸녀도 있었음에도 그중 가장 약하고, 부족했던 '조제'를 선택한 데는 그것이 '연민' 이었을 수도 있고, '호기심' 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진짜' 사랑이었는지도. 조제를 위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어렵게 구해주고, 봉사단체에 의뢰해 집을 수리해주는 것을 보면 조제에 대한 츠네오의 마음은 '진짜' 였던 것 같다. 조제의 입장에서는 할머니와 집이 전부였던 이전 세상에서 탈출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츠네오의 관심과 사랑에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신세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적을 나이 때 겪는 사랑의 시작은 호기심일 확률이 크다. 새로운 세계에 대해 설렘과 궁금증 그리고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을 나이에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은 보통 이상화된 세상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 상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고 살고 있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끌림은 그렇기에 새로운 세계의 매운(?) 맛을 아직 잘 모르는 나이 때 더 강하다. 반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동질감, 유사한 가치관에서 오는 안정감이 상대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다. 본능적으로 새로움에 대해 더 이상 자극받지 않고, 오히려 경계하는 나이 혹은 그런 성향일 때 더욱 그렇다. 다른 환경의 상대에 호기심과 설렘보다는 이질감과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비슷한 사람이 오래간다는 관계의 진리의 측면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20대가 내가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30대가 내가 가진 것을 비슷하게 가진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본성이자 생존을 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과 성장에 대한 영화다.
연민은 쉽게 지치며, 호기심은 이내 지루함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아니, 심지어 사랑이라 하더라도, 고결하고 숭고한 사랑이라도 언젠간 변한다. 영원한 건 없다는 진부한 말이 사실 영원하다. 그것은 불편한 진리이다. 가장 최상의 가치인 '사랑'에서도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는 '감정'과 불완전한 '의지'를 가진 나 그리고 너, 인간이 그렇게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츠네오가 조제를 담담히 떠나오는 길에 무너져 오열(?)하는 건 혼자 남겨진 조제가 불쌍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다 그렇게 호기심 많은 상대이자, 열렬히 사랑했던 '조제'를, 내가 없으면 호랑이도 못 보고, 세상에 나갈 수도 조차 없는 연약한 '조제'를 끝까지 사랑할 수 없고, 돌볼 수도 없는 불완전한 사랑의 가벼움과 연약함에 대한 처절한 슬픔이었는지 모른다. 츠네오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나와 우리의 사랑과 이별의 모습이고 과정이기 때문이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댈 수 있지만, 사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츠네오의 독백은 떠나온 자 모두의 이유이다. 이별의 이유는 단순하다. 더 이상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없든, 혹독한 환경에 견딜 수 없는 상황이든, 결국에는 사랑을 이어갈 의지와 능력이 없는 것이다. 가벼운 사랑과 무책임함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쩌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 사랑이 너무나 작아서도, 네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별의 이유가 결국 내가 도망친 것이듯, 사랑이 작아진 것도, 사랑의 의지가 없어진 것도 결국 우리는 사랑을 변함없이 이어갈 능력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츠네오와 조제가 이별을 하고 시간이 지난 후 묵묵히 생선을 굽고, 혼자서 외출을 하는 조제의 모습 속에서 다시 담담해진다. 이별, 떠나옴과 만남을 반복하는 삶 속에서 불완전하지만 나는 조금씩 변하고 성장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완전해질 수는 없지만, 변할 수는 있다. 스무 살에 보았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십여 년이 지나고도 새롭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 시간만큼, 이별하고 만나고 떠나온 만큼 내가 성장하고 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츠네오와 조제는 서로 다시 만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상대를 만나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때, 서로를 생각할 것이고, 새로운 상대를 이전보다 더 오래, 더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개별의 이별은 안타깝고, 슬프지만 인생 전체를 볼 때 그것은 아름다운 사랑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