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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Sep 16. 2024

노래를 잘 못 부르게 된 이유

드디어, 10년이 넘게 몰랐던, 내가 노래를 잘 못 부르게 된 이유를 찾았다. 원래는 잘 불렀었나라고 묻는다면, 노코멘트를 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나는 진짜 잘 불렀었었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재수 없을까?) 나랑 노래방 가자고 조르던 사람들도 있었고, 대학교 축제에서 노래도 부르고 했었는데, 점점 노래방 가는 일도 줄어들고, 특히나 캐나다 오게 되면서 노래방 갈 일도 없고,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가 전부 영어노래고 해서 (청소하면서 Old Town Road를 부를 수는 없지 않나) 점점 노래를 안 부르게 되고, 그래서 노래 실력이 줄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꽤 괜찮고 납득할만한 변명거리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성대 한쪽이 안 움직여요"


음식을 삼키는 데에 가끔, 아주 가끔 목에 걸리는 것 같아. 의사를 찾았었다. 그래도 원인을 알 수 없어서, 후두초음파도 찍고, 한국에서도 진찰을 받고 했는데, 다들 잘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살을 빼는 게 좋겠다는 식의 항상 비슷한 말을 들어왔었다. 그러다, 몇 년 만에 만난 캐나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다짜고짜 카메라를 코에 밀어 넣는 바람에 드디어 문제를 찾게 되었다. "한쪽 성대가 마비되었어요" 처음에는 종양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이내 나의 병력을 들어보고는 종양은 아닌 것 같다는 진단을 했다. 14년 전에 한, 뇌수술이 한쪽 청력만이 아니라, 한쪽 성대도 마비시킨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마비된 성대가 닫혀있어서,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는 거고, 조금 조심해야 하는 건, 한쪽으로만 숨 쉬니까 숨이 찰 수 있다는 거다. (오!!! 이것도 운동하고 숨찰 때 좋은 변명거리인데!!)


지인 중 한 명이 해외여행 중에 손가락을 다쳐서, 현지 응급실에서 손가락을 치료받았는데, 그때 이후로 약지손가락 한마다가 평생 굽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억울해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쪽 귀가 안 들리는데, 나한테 할 불평은 아니지 않나? 손가락 하나 가지고 그렇게 억울하면, 내가 안 들리는 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쏘아붙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인과의 자리가 끝난 후, 어쩌면 나도 고작 귀하나 안 들린다고 너무 큰 불평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사람이란 이기적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부터 가진 것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부모님 세대처럼 전쟁 속에서 살지 않았고, 난민이 되어야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하루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는다. 몸 건강히, 돈 걱정할 필요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고 살아왔다. 두 손을 쓸 수 있고, 두 눈으로 불 수 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다. 어쩌면 내 몸에서 두 개 있는 것 중에서 하나를 잃어도 가장 타격이 없는 한쪽 청력을 잃었을 뿐이었다. 한쪽 얼굴은 조금 마비되었지만, 여전히 잘 생겼다. (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  거기에 이제 노래를 잘 못하는 매우 납득할 만한 변명거리가 생기고, 과한 운동을 피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생겼다.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내게 생긴 안 좋은 일을 생각해 보고,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계속 더해본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가진 좋은 것들에 더더욱 감사해진다. 아침에 먹은 코스트코 크로아상이 너무 맛있었다. 새벽에 비가 와서 뒷마당 깻잎에 물을 안 줘도 될 것 같다. 스캇은 아직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 목욕시키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날씨가 풀려서 산책을 하기에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일만 있는 매일매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성대재활도 할 겸 노래방 마이크를 하나 사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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