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한 지 11년 차가 되었다. 한국에서 일한 14년을 합하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25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중간에 이민 오고 처음 몇 개월을 제외하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지금까지 24년 넘게 정말, 끊임없이, 월급쟁이로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참 불성실하기 그지없는 내가 스스로도 정말 놀랍다. (잘했어, 친구!!)
그런데, 그렇게 오래 일하다 보니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같은 나이대의 팀원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고, 나보다 나이 어린 팀장도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한다. 나도 그렇고, 팀장도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이가 업무에 필요한 요소도 아니고, 그 사람의 실력을 대변해 주는 것도 아니니 사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업무 외의 이야기를 할 때, 가족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의 나이를 알게 된다. 나이 어린 친구는 자기 결혼식 이야기를 하고, 나이 많은 친구는 자기 자녀의 결혼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일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조금 낯선 모습들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존중을 기대하지도 않고, 나이가 어리다고 실력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어려도 실력이 좋으면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나이가 많아도 실력이 없다면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래서 목소리에 힘을 실으려면 실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어린 친구라도 점점 일이 없어져 결국 그만두게 된다. 그래서 새로 온 친구들은 끊임없이 시니어 개발자들에게 도전하고, 시니어 개발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한다.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권위로 누르려는 시도가 있지만, 그 권위 또한 나이와 상관없는 이유로 세워진 것이다. 나이 어린 팀장이 나이 많은 팀원에게 직급으로 누르려 하고, 나이 많은 팀원도 나이 어린 팀장에게 부조리한 일은 못하겠다고 반발하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아주 가끔 회사에서 영어 이름을 지어서 부르면서 수평적인 조직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간과하는 것이 있다. 영어 이름을 부른다고 아부가 없거나 수직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수평적인 조직은 모두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있는 회사도 사장 이름을 부르고 존댓말 한 번 하지 않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 사표를 쓴다.
“확 그만둘까? 진짜 그만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