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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점심시간은 심심해

수다쟁이의 점심시간

by 스캇아빠

캐나다 이민후 첫 번째 한국방문은 2년 6개월 만이었다. 5살 딸과,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2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사는 것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았던 날들이었다. 중간에 돌아가게 되면, 이민뿐만 아니라, 이혼 후 삶도, 아빠로서도, 모두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살았다. 은근한 인종차별도, 영어를 잘 못해서 받게 되는 불이익도, 가족, 친지, 친구도 하나 없는 혼자이기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도, 캐나다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문외한임에도, 한없이 손이 모자라는 싱글파더임에도, 억척같이 살았다. 그렇게 치열한 2년 6개월을 살았고, 취직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적응을 했다.


처음 한국 방문 후 제일 반가운 것은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한국어로 실컷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사실 나와 내 친구들이 좀 수다스럽기는 하다. 지난여름만 하더라도, 한국 입국 다음날, 친구들과 만나 엄청난 수다를 떨었다. 저녁 6시에 만나, 커피숍에서 2시간 정도 수다를 떨고, 저녁을 먹으러 가서 또 2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가, 다시 처음 갔던 커피숍으로 돌아가서 1시간 정도 수다를 떨고, 커피숍 사장님의 문을 닫는다는 통보에, 편의점으로 옮겨서 1시간 반 정도 또 수다를 떨고, 다시 친구네 집 근처로 자리를 옮겨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도 못다 한 이야기는 내일모레 다시 만나하기로 하면서 헤어졌었다.


캐나다에 나름대로 적응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내가 그동안 캐나다에서 무엇이 그렇게 부족했었나 알 수 있었다. 사실 영어도 잘 못하고, 교회도 잘 다니지 않기에 당연하다고 느껴질 수 있었지만, 사실 내가 수다에 목말라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점심시간 때문이었다.


한국 점심시간은 처음 회사에 입사한 사람이 있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팀이 전담에서 밥을 챙기고, 뭐 먹을지 같이 고민하고, 밥을 먹으러 가서도 이것저것 물어본다. 나이, 가족관계, 출신학교, 고향, 자녀유무, 이성친구 유무, 취미, 특기, 지난 회사는 어디고, 지난여름은 어디로 여행을 다녀왔냐까지 점심시간은 온갖 수다로 넘쳐난다. 옆팀의 김대리를 욕하고, 거래처 최 과장을 씹는 시간이다. 어제 본 TV 드라마 남자주인공의 연기실력을 논하고,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의 평점을 메긴다. 그러다, 저녁에 술 한잔 하면서 마저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캐나다 점심시간은 심심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근처의 식당이나, 푸드트럭, 슈퍼마켓으로 나가 점심을 사 온다. 정말 눈치껏 따라가야 한다. 만약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으면서, 그런 행렬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원래 뜻과는 다르게 오늘 점심은 거르겠단 의미가 된다. (또는 바쁘니까 건드리지 마.) 그리고 그렇게 사온 밥은 알아서 휴게실에 앉아서 먹는다.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맥주를 마신다. 스몰톡은 하지만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묻지 않는다. 매번 나오는 주제는, 지난 주말에 뭐 했어 이고, 매번 나오는 대답은, 별일 없었어 이다. 간혹 어디를 갔다던지. 무슨 영화를 봤다던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한국에서의 수다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시간이 쌓여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고민을 듣고, 화나는 일을 같이 겪으며 동료애가 쌓이겠지만, 한국의 그것과 같지 않다.


어쩌면 지금 한국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좀 더 개인적인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캐나다의 점심시간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가끔, 한국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을 그리워한다. 우르르 몰려나가 다 같이 김치전골을 먹고, 내기에서 진 구대리가 사던 커피를 마시면서 김과장을 흉보던 그때 그 시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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