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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에서 출근하기

by 스캇아빠

어릴 적 나는 사람 많은 고속버스터미널 옆에서 살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터미널 근처에서 살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머물러 있는 사람들과 곧 떠나갈 사람을 구분하면서 살아야 했다. 동네 독서실 아저씨, 이발소 아저씨, 문방구 아줌마, 서점 아저씨, 오락실 할아버지와 반대로 매번 주인이 바뀌는 빵집자리 아줌마, 아이스크림 가게 아저씨, 책판매 영업하시는 누나들에게 나는 정을 붙이기를 거부했다. 누군가에게는 잠깐 돈을 벌기 위한 또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 잠시 들리는 곳이 나에게는 학교를 다니고, 밥을 먹고, 물건을 사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지나가는 곳, 나에게는 사는 곳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그림 같은 곳에서 실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 살면서, 주말에는 루브르 박물관을 보고, 스위스의 풍경을 매일 아침 보면서 일어나고, 미켈란젤로 천장화를 매일마다 볼 수 있는 곳에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내가 이민 가기 전에 경복궁을 갔던 횟수보다, 이민 간 후 한국에 올 때마다 갔던 경복궁 방문 횟수가 훨씬 더 많았고, 토론토 아쿠아리움은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에 봤던 그 아쿠아리움이 더 크고 신기했다. 파리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파리에서의 삶이 좋아 보인 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느낄 수 있다.


출근길에서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요리조리 헤치며 걷다가, 관광객들이 무심코 가로막고 있던 문에 출입증을 찍고 출근하는 기분은 언제나 이상한 느낌이다. 누군가는 이곳을 오기 위해 큰돈을 썼는데, 나는 여기에 출근하기 싫어서, 오늘아침에도 남은 연차를 확인했었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설레는 듯한 표정을 보면서 내가 아침에 그렇게 오기 싫어했던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몇 달 전부터 꼭 방문하고 싶었던 그 장소라는 생각에 죄책감과 으쓱해지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이민을 생각할 때만 해도 조금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좋은 곳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닐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아이들과 무탈히 하루를 보내고, 오늘 저녁 퇴근하면 집에서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는 곳이면 된다. 저녁 먹고 스캇과 산책하고 소파에 누우면 건너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는 곳이면 그곳이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틀 출근보다는 완전 재택근무 하는 회사로 알아볼까 보다. (절대로 출근이 힘들어서 그런 거 절대 아니다. 진짜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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