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에 치이듯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문득 예전생각이 들어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정말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일주일 후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도 생각할 수도 없었던 날들, 취업이 안 돼서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발품을 팔면서 돌아다니던 날들, 저녁에 아이들이 자고 나서야 화장실도 샤워도 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과 비교해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가진 것이 정말 많다고 느끼게 된다.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시니어센터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여자친구에게 일하다가 있었던 일들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별일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날도,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생각해 달라 조르는데, 그러면 여자친구는 못 이기는 척, 이내 하나둘씩 이야기들을 한다. 병원에서 다른 간호사나 조무사와 있었던 파워게임 직장 이야기, 할아버지가 여자친구에게 플러팅 한 이야기,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다른 할머니 하고 부부처럼 지내서 원래 부인인 보호자가 화를 낸다는 이야기 같은 이야기 들을 말이다.
어느 날은, 시니어 센터에 할머니 한분이 새로 들어오셨는데, 치매가 있으셨단다. 할머니는 정말 곱게 나이가 드셨는데, 하늘하늘한 셔츠를 입고 소녀같이 밝게 웃는 환한 분이셨단다. 그런데, 할머니는 시니어센터가 처음이셔서 어색하고 불편하셨는지, 집에 계속 돌아가고 싶어 하셨고, 결국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단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시는 날, 아침부터 공용거실에 나와 창밖을 보며 할아버지를 기다리셨더란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리시다가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할아버지가 오셨음에도, 처음에는 못 알아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할아버지를 알아보시고는 정말 한참을 아이처럼 할아버지를 끌어안고 우셨다고 한다. 보고 싶었던 얼굴을 봐서 우시는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던 사실이 슬퍼서 우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할머니가 창밖을 보면서 아침부터 기다렸어"
"그런데, 정작 할아버지를 보고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알아보시고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우시더라"
페이스북에 올린 예전 글들을 찾아보다가, 고생했던 글들을 보게 되었다. 영어 인터뷰 때문에 정말 긴장했던 순간, 인터뷰를 망치고 양복 입은 김에 미술관을 구경했던 이야기, 점심시간에 어떻게 점심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아무것도 못 먹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결국 퇴근할 때가 돼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다 퇴근하고 나만 남아 있던 이야기, 인터뷰 때문에 비행기 타고, 운전하고, 6시간 인터뷰하고, 다시 비행기 타는 3일간의 고생기 같은 글들이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화가 많이 나서, 때로는 너무 힘들어하던 순간들이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아팠던 순간들을 잊어야 할 테지만, 아팠던 시간들이 있어서 지금의 시간들이 더 빛나고, 사랑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지금의 시간들을 더 아프게 하기도 하는 듯 하다.
그러니까, 자기 전에 알람 맞추는 것 잊지 말고, 출근할 때 지갑하고 휴대폰 잘 챙겨서 지각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