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서로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캐나다에서 한글 종이책을 읽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한글 종이 책을 나눠줬음에도 아껴두었던 책, 줄이고 줄인 이민 짐에 꼭꼭 챙겨서 가져온 책, 몇 번의 이사에서도 절대 버리지 않고 지켜뒀던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건네주었다. 어떤 책인지 묻는 질문에, 설명이 힘든 책이니, 꼭 직접 읽어보라고, 단단히 알려 주었지만, 해당 책들은 다시 우리 집 책장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여전히 약혼자는 그 책만 보면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당시 5권을 건네주었는데, 1권을 읽다가 나와 헤어지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고 한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오면, 스멀스멀, 문득문득, 찾아오는 병이 있다. 우울증 말이다. 아무리 쫓아내도 머리주위를 맴도는 구름처럼 우울감은 계속해서 내 머릿 위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검은 생각들을 구겨 넣는다.
간단한 이야기도 두 번 생각하게 만들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하고, 자꾸만 모든 것에 이유를 물어본다. 왜 밥을 먹어야 하는지 묻고, 왜 사는지 이유를 묻는다. 왜 잠을 자야 하는지 묻고, 왜 잠을 자지 않는지 물어본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물어보고,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물어본다. TV를 보고 한참을 웃고 있으면 곧바로 정색하고 바보 같이 웃는 나를 비웃는다. 나름 안정적이었던 내 루틴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작은 문제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해서 지치게 한다. 어느 날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불안하게 하고, 슬프게 만들고, 힘 빠지게 한다.
캐나다로 이민온 후, 어느 정도 정착하게 된 후, 어느 저녁시간, 회사를 다녀와 아이들을 데이케어에서 데리고 와 저녁을 해주고, 아이들과 같이 TV를 보고, 빨래를 하고, 주방 정리를 하고, 아이들에게 씻으라고 이야기하고, 모두 침대에 눕힌 뒤, 혼자 TV앞에 앉았다가, 뜬금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모든 게 재미없고, 의미가 없는 듯 느껴졌었다.
다행히도, 우울증을 걸리기에는 내가 너무 다사다난한 생활을 보냈던 시기였던 지라, 나는 얼마 안 있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혹시라도 우울증 낌새라도 느껴지면 (주로 나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이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다) 일부러 바쁜 일들을 만들어 극복해 왔다. 한마디로, 매년 열심히 도망만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었을 때 제일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주여. 내가 알 필요 없는 것을 알지 않도록 해 주세요.
주여. 내가 알아야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을 알지 않도록 해 주세요.
내 맘대로 번역하고 수정한 거라 책과 많이 다르지만, 뜻은 대충 비슷한다. 안다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해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한 가지 생각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지만, 그게 그렇게 위대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어떤 일은 크게 잘못되었고, 어떤 일은 아주 바른 일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생각일까? 그런데, 세상의 모든 진실과 시작과 끝을 아는 위대한 로봇 "마빈"은 왜 그토록 냉소적이고, 자기의 뇌 일부를 막아서, 자기가 왜 막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머리 2개, 팔 3개의 "자포드 비블브락스"는 왜 그리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걸까? 마빈은 모든 걸 알지만, 언제나 우울하고, 자포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신이 최고라고 여긴다.
만약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고 있다면, 그리고 해답을 몰라 우울해하고 있다면, 우울해하지 마시라.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4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