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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블레이드의 나라를 가다

열정의 나라

by 스캇아빠

한국여행 오기 전, 나는 아이들한테 온갖 이야기로 같이 가자고 꼬셨었다. 사실 꼬임이 통하든 안 통하든 이미 비행기 티켓은 사놨었고, 싫어하든 좋아하든 같이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한국방문이 즐거운 여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었다.


그리고 그런 여러 꼬심 중에 하나가, 일본 여행이었다. 첫째 아이는 캐나다에서 쇼핑몰을 갈 때면 꼭 작은 키링들을 놀라울 정도로 높은 가격에 사들였고, 둘째는 이제 10학년에 올라감에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베이블레이드라는 팽이돌리기 놀이였기에, 아이들에게 닌텐도 게임과, 베이블레이드의 나라를 가자는 이야기는 꽤 혹한 미음이 생기는 이야기였을 거라 생각했고 꽤 통했었다. 그리고 그 일본여행이라는 말의 씨앗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 무럭무럭 자라서, 지진과 예언등의 이야기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자라 있었다.


그래서 알아본 일본여행의 비행기 티켓은 TV뉴스에서 말하는 것처럼 5만 원짜리는 찾을 수 없었고, 5만 원의 5배 되는 금액을 지불해서 위탁수화물 없는 티켓을 구할 수 있었고, 4명이서 있어야 하는 숙소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꽤 비쌌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이 연일 최고기온이라고 뉴스에서 이야기하고, 어머니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을 골라 일본여행을 떠났다.


짧은 여정이었던 만큼 우리는 부지런히 여러 곳을 다녔다. 우리는 일본국립박물관을 갔고 센소지 사원을, 아사쿠사를 갔고, 메이지신궁을 갔고, 하루주쿠를 갔고, 오모테산도의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봤고, 신주쿠의 스크램블 크로싱을 봤고, 닌텐도 재팬을 갔고, 황궁동쪽정원을 갔고, 츠키지 시장을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키하바라를 갔다.


우리는 국립박물관, 우에노공원, 센소지, 메이지신궁과 황궁동쪽정원에서 초록색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본을 볼 수 있었고, 하라주쿠와 오모테산도, 시부야에서 복잡하고 현대적인 일본을 보았다. 중간중간 보이는 작은 사원과 츠키지 시장은 옛것을 아끼는 일본을 보았고. 마지막으로 하키하바라에서는 놀라운 열정을 보았다.


그 열정들은 순수했고, 차분하면서도 진지했다. 작은 (정말 말 그대로) 차이에 환호하고, 감격스러워했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에는 어떤 해악도 없었다.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한 가지 취미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그들 모두를 즐겁게 하는 듯했다.




우리는 애니메이트 아키하바라 7층의 베이블레이드 팝업매장에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역대 베이블레이드들이 소중하게 유리관에 덮여 전시가 되어 있었다. 그걸 본 아이는 마치 유니콘을 본 듯 신기해했다. 그때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던 남자는 가방에서 베이블레이드(팽이)를 보관하는 가방을 꺼냈다. 가방을 열어 가방을 빼고, 그 가방을 열어 베이블레이드를 꺼냈다. 베이블레이드는 하나하나씩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다른 이들의 가방도 모두 소중한 팽이를 보관하고 있었다. 어떤 이의 가방은 베이블레이드보다 훨씬 비싸보였지만, 가방은 가방일 뿐 어찌 팽이의 가치만큼 할 수 있을까.


매장 앞쪽으로 갔을 때 우리 앞에서 연습경기가 치러지고 있었다. 기합과 함께 경기장에서 팽이가 돌기 시작했고, 각 플레이어들과 그걸 지켜보는 관중들은 모두 진지했다. 3개의 경기장에서는 계속해서 경기 전 상호인사와 경시시작의 기합과 경기승패에 따른 웃음과 안타까움이 있었고, 경기 후 좋은 경기였다는 인사소리로 가득 찼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진지했고, 팝업스토어 스태프도, 경기진행자도 누구도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내가 10학년 아들에게 재미있어?라고 물어보기 위해 아들을 돌아봤을 때, 아들은 이미 경기에 집중해하고 있어서,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 보였다.


곧 아들은 새로 나온 베이블레이드들을 꽤 진지하게 골랐고, 첫째 아이가 전날 시부야에서 돈을 쓰는 동안 쓰지 않고 모아놨던 돈을 모두 팽이를 사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경기장을 배경으로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있을 때, 팝업스토어 관계지 중 한국말을 하는 분께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관계자는 우리에게 1:20분 시합이라는 티켓을 주며,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맞춰 봐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괜찮다고 했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간단히 밥을 먹은 후,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다시 팝업스토어로 돌아가야만 했다.


우리가 돌아갔을 때는 이미, 경기장에 더 많은 사람들로 꾁 차 있었다. 모두들 팽이를 보관하는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아이와 어른들이 모두 스태프의 소리지름에 차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빠와 아들, 30대로 보이는 큰 가방의 청년, 수염 난 내 또래의 아저씨, 많아도 7살 정도 돼 보이는 동생과 그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10살 정도 돼 보이는 형 등등등. 많은 이들이 경기를 하기위해 좁은 행사장에 모여있었다.


경기는 이러했다. 경기는 단 한경 기였고, 스태프와 팽이싸움에서 이기면 한 장의 카드를 받았다. 지면 아무리 어린아이도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어떤 가족은 형과 동생이 아버지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했지만 한 장의 카드도 얻지 못하고 쓸쓸한 얼굴로 돌아서야 했다..


마침내 아들의 차례가 왔다. 아들의 상대는 서로의 베이블레이드를 보여주며 문제가 없음을 알렸고, 서로 자세를 취했다. 서로는 3,2,1, GO라는 기합과 함께 팽이를 돌렸고, 팽이는 경기장으로 떨어졌다. 초반에는 아들의 팽이가 밀리는 듯했다. 거센 공격에 경기장에서 굉음이 났다. 팽이는 눈으로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아들의 팽이는 잘 버텨냈다. 그리고, 반격. 아들의 팽이는 거센 공격을 모두 받아낸 후, 그동안 참고 있었던 힘을 발휘했다. 힘이 떨어져 가는 스태프의 팽이에 아들의 팽이는 거칠게 부딪쳤다. 또다시 큰소리가 났다. 상대의 팽이가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 아들의 팽이는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모두 짜내 공격했다. 힘이 떨어져 가던 상대의 팽이는 아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주변 관중들은 모두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지난 몇 번의 경기가 있었지만, 아들의 경기는 단연 명경기였다. 사람들은 박수를 쳐줬고, 승리의 카드는 아들에게 주어졌다. 아들은 그 카드를 높이 들었다.


아들에게 일본은 분명 좋은 곳으로 기억될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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