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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식이 되는 법

by 스캇아빠

캐나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직장을 얻어서 온 것도 아니고,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오지도 않았다. 지금생각하면 너무나 무모하게, 그냥 한번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 무계획의 삶은, 아이들이 있어, 계획적이 되었다.


나를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신기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내가 혼자서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10년 넘게 아이들을 키웠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지도, 책임감이 많지도, 성실하지도 못한 내가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자세히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사실 나는 아이들을 힘들게 키웠다기보다는, 힘들었던 시절을 아이들을 키우며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내상황에 맞았다.


어느 날 이민생활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 해도, 아이들이 있어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고, 힘부침에 무계획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보내는 와중에도 아이들이 있어서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이 있어서 더 많이 움직였고, 더 열심히 살았다. 무기력증에 빠져, 우울증에 빠져, 누워만 있고 싶을 때도, 아이들은 내게 힘이 되어주고 응원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가 되는 법을 배워야 했고, 우리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 갔다.


다만, 부모가 되어갔다고 했지, 좋은 부모가 되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사춘기 딸하고는 시시때때로 신경전과, 서로에게 독한 말을 내뱉었고, 누가 봐도 착한 아들에게는 작은 실수에도 큰소리를 냈다. 혼을 내야 하는데 화를 냈고, 잘못의 경중보다 내가 화난 정도에 따라 목소리 크기가 달라졌다. 매일매일이 내 인성에 대한 도전이었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식이 되는 법 또한 쉽지 않음을 배우고 있다.


지난 주말, 와이프의 어머니, 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결혼 전부터 나는 우리 아이들의 존재를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겠다고 와이프에게 큰소리를 치곤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만날 때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들에게 다 큰 손주가 생겼으니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아무리 뻔뻔한 나지만 쉽지 않았고,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장모님은 아이들을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큰 손주가 생겨서 좋다고 하시고, 와이프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죄송함이 가득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어머님이 커다란 장바구니를 건네주신다. 직접 텃밭에서 기른 온갖 채소를 하나하나 씻어서 싸주셨는데, 누가 봐도 오래전부터 준비한 야채들이었다. 와이프는 필요 없는 걸 싸줬다고 퉁퉁거리며 트렁크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만 야채를 트렁크에 넣었다는 것을 잊고 우리는 집으로 올라와 버렸다.


저녁에 잠깐 바람 쐬러 나가려, 차에 타려 할 때 우리는 왜 마늘냄새가 차에서 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고, 곧 그 시큼한 냄새는 어머니가 싸주신 채소와 마늘이 트렁크에서 익어가면서 내는 냄새라는 것을 알았고, 그걸 본 와이프는 눈물이 터져 버렸다.


"부모님의 사랑을 우리는 얼마나 당연하다고 느끼고 살아가는가. 수많이 받은 것들은 모두 잊고, 가끔씩 느끼는 섭섭함에 나는 얼마나 짜증을 냈었나. 사랑의 표현법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닐 텐데, 왜 그 사랑법이 내게 닿지 않는다며 서운해했었나. 건강하세요.라고 가끔 인사드리는 것보다. 어머님에게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이 있습니다라고 자주 인사드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닌데. 나는 트렁크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고약한 냄새를 풍길 때까지 신경 쓰지 않았구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좋은 자식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좋은 자식이 되려 해본 적은 있었나. 좋은 자식이 되는 법이 있다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구나"


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데, 트렁크에서 익어서 그런지 이번 토마토는 지난번보다 더 맛있는 거 같다. 다음 토마토도 트렁크에서 익혀 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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