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머무는 동안, 어디서 지낼 건지는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보아, 어머니 집에서 지내는 건, 2주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 2주 정도 지날 때면, 어머니든 나든 결국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든 어느 모임에서든 문제가 있을 때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건, 내가 어머니의 수제자로서 아주 잘 배웠다. 그 어머니와 그 아들이 만났으니,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딱 2주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와이프의 설득이 있었고, 어머니의 주름이 있었다. 항상 강하게만 보이던 어머니는 조금씩 나이가 들고 있었다. 예전부터 나는 어머니를 아는 사람에게, 어머니는 나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워낙 건강하시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한국 가기 얼마 전에, 무릎이 아프시다고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었다. 아! 물론 지금은 괜찮아지셔서 온갖 모임에, 댄스학원, 노래학원, 퇴직자모임, 동창모임, 80km 자전거 모임 등등을 다니신다. 아프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문제는 2주면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간만에 온 어머니 집에는 오래된 물건이 가득하다. 예전에 집에 모임이 있어서, 소주를 드시다가 남겨놨다는 그 소주병은 몇 년째 그 자리에 있다. 거실에는 매트가 깔려있는데, 원래 용도인 전기매트를 푹신하다는 이유로 거실에 깔아놓고, 전깃줄은 뽑아놨다. 하지만, 전기 꼽는 곳이 계속해서 발에 걸리는데, 그렇게 불편하게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 그 매트를 10년 넘게 쓰고 계신다. 어머니께, 10년째 안 쓰는 전기매트면 그냥 코드 부분을 분리해 버리면, 발에 안 걸리고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언젠가 쓸 수도 있는 전기코드를 왜 없애냐고 하신다.
10년째 안 쓴 매트지만, 언젠가는 필요할 일이 있을 거라는 논리는 집안 서랍서랍에 들어가 있다.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있지만, 카세트테이프를 찾을 수는 없다. 올림푸스 배터리 충전기는 배터리도 없고, 올림푸스 제품도 없다. 언젠가 집에 딱 한번 필요했던 전동 드릴은, 여전히 서랍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어머니가 애순이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애순이 할머니가 너무 나이 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저 정도는 아닌데라고 생각했는데, 오래된 전자제품들, 오래된 소주병, 오래된 매트를 보고 있자니, 왠지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2주 이상은 자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