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도착한 날은 낮기온 37도의 폭염이었다. 그런 더위는 내가 티셔츠를 충분히 안 싸갔음을 느끼게 해 줬다.
“멤버십 카드 있으세요?”
“여기요”
“음..?! 해외 멤버십은 사용이 안 돼요 “
처음 캐나다에 갔을 때 소도시에 이제 갓 생긴 코스트코에 한국멤버십카드는 결제할 때마다 매니저를 찾게 했다. 외국카드는 뭔가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쓸 수 있었고, 나중에는 내가 점원에게 해외멤버십일 때 포스사용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거꾸로 한국 점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돼버렸다.
나는 잠원국민학교, 신반포중학교, 반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는 사람들 생각에 8학군이 뭔지도 잘 모르던 시기였다. 전세금에 조금만 더 보태면 집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부족한 예산을 따라, 그냥 골라진 지역이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143번 버스 노선이 있어서 출퇴근에 용이했기 때문 이란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가본 내 모교들은 가까이 가는 것부터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고층 아파트들 사이, 게이트를 지나지 않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골목들을 찾아 들어가야 모교를 볼 수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들은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고, 잠시 차를 세워 구경을 해볼 수도 없었다. 반포고등학교 앞을 지날 때 즈음엔 이미 화가 많이 나, 아이들에게 던지듯 저기가 아빠 하이스쿨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해버렸다.
책을 사기 위해 들렀던 고속터미널에 있던 영풍문고는 바로 옆 옷가게 하나보다 더 작아졌고, 영풍문고를 찾기 위해 물어봤던 팝업스토어 직원은 여기 서점이 있었어?라는 표정으로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봤다. 대학입학원서를 사기 위해 한가람문고 앞에서 몇 시간씩 서있었던 그곳에는 온통 카페와 디저트가게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곳에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찾은 내 고향은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멤버십카드로, 신용카드로, 주차장으로, 너무 작은 서점으로 말이다.
앞으로 2달간 한국여행의 시작이 그리 부드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