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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기

쓰기 쓰기

by 스캇아빠

브런치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러 장르의 글이 있다. 그럼에도, 각기 다른 종류의 글을 쓰는 작가님들 이어도, 공통된 주제의 글이 있는데, 그건 글쓰기에 관한 글이다.


책을 내서, 책을 내고 싶어서, 또는 좋은 글을 쓰는 법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서, 등등의 이유가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입장이 아닌, 순수히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는 그런 글들을 즐겨 읽지 않는다. 그건 내가 책 읽는 습관과도 연관이 있는데, 나는 "뭐를 위한 7가지 습관"같은 류의 책을 피하고, 무조건 소설만 찾아서 읽는 취향상, 글쓰기에 관한 글은 묘한 반항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쓴다. 굳이 변명하자면 2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첫째 이유는 자칭 매니저라고 하는 존경하는 나의 동반자님의 잔소리 때문이고 (내 직업은 작가가 아닌 컴퓨터 개발자다!), 두 번째로 브런치북을 10회 이상 쓰기 전에는 연재 종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쓰기 싫은데 쓰라니까, 뭘 쓰나 생각하다, 쓰기에 대해 쓰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쓴다.



브런치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면, 가끔 이렇게 좋은 글을 이렇게 공짜로 읽어도 되나? 하는 글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어떻게들 다들 아는지, 구독자가 순식간에 불어나고, 어김없이 종이책으로 출간을 한다. 많은 경우를 본것은 아니지만 감히 판단하자면, 그런 글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정말 깊은 생각을 거쳐서 눌러서 쓴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내용이 어둡거나, 읽는데 생각을 오래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글들은 쉽게 읽히면서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글에서 나는 배경의 온도를 느낄 수 있고, 화자의 기분을 알 수 있고, 주변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상황의 속도를 알 수 있다.


최근에 읽었던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는 나는 눈 오는 밤을 느낄 수 있었고, "맡겨진 소녀"에서는 바닷가 냄새와 농장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연을 쫓는 아이"에서는 골목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마리암의 마지막 표정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는 한사람에게서 젋은 청년과 주름많은 할아버지를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때로는 바람을 가르며 뛰기도, 물속에서 허우적 되기도 한다. 읽어서 상상하는 세상은 휴대폰 화면의 영상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고, 어설푼 연기자의 대사가 아니라, 주인공의 말을 직접 듣고 공강하게 한다. 좋은 글들은 내가 그곳에 있게 했고, 그 상황에 처해 있게 한다. 아픔에 공감하고, 기쁨에 웃음 짓게 하고, 내가 겪은 일에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드라마를 보다가 답답해서 쓰고 싶고, 드라마의 말도 안되는 억지에 내가 직접 쓰고 싶다. 아픔에 위로받고 싶어 쓰고 싶고, 기쁨에 같이 기뻐해 주길 기대하며 쓰고 싶다. 내 글에서 향기가 났으면 좋겠고, 내 글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 쓰라는 잔소리가 조금 줄면, 좀 더 나은 글이 나올 것만 같다. 그말을 조금 길게 했다.

응? 응! 맞아.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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