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17.
내가 대학 입시 학력고사를 치뤘던,
바로 그 곳! 의 풍경이다.
나는 지금도, 그 겨울의 스산했던-
그 곳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에, 수능을 보는 수험생 친구들은
아마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때의 학력고사는.. 진정한 복불복! 이었다.
예비고사 (모의고사) 평균 점수를 기준으로,
지망하는 대학을 오직 1군데만! 선택할 수 있었고..
그 지망하는 대학 안에서,
학과만 1, 2, 3 순위까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단 하루! 원서를 접수하는 날에-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으로 직접 가서!
줄을 서서, 원서를 접수해야만 했으며!!
(인터넷도, 핸드폰도 전무하던 시절이었으니-
현장 분위기나 경쟁률 등의 상황도
직접 가서 확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가족들이 2-3개의 대학으로 찢어져,
눈치 작전을 펴다가.. 막판에, 학교와 학과를
결정하고, 원서를 접수하는 일도 많았고..
그 막판에, 정원 미달이 예상되는 학과로
한꺼번에 몰려드는 일도 많았다. ㅋ)
그러면, TV에서는..
거의 하루 종일, 각 대학의 학과별로-
현재의 경쟁률을 생중계하다시피 했고,
마감이 된 후에는.. 최종 경쟁률을 알려주었다.
(비교적 안정권으로(?!) 지망했던 나는,
아예 오전에 일찍 원서 접수를 해버렸는데..
접수 번호가 9번 이었고,
최종 경쟁률은 2.3 : 1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학력고사 시험 당일까지도-
한 겨울의 혹한을 뚫고,
자신이 지망한 대학으로 가서..
(왜 항상 입시 날만 되면, 그리도 추웠는지;;;)
대학 강의실을 임시 개조한 수험장에서,
생판 낯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과 함께!!
단지, 같은 과를 지망했다는 이유로-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이 시험을 봐야 했고..
그 날의 단 한 번! 학력고사 시험 성적으로-
바로 합격 여부가 가려져서, 통보가 되었으니..
이거야 말로, 진정한 복불복. 아니겠는가 말이다;;;
학력고사를 치르고,
합격을 하면 정말 다행이지만..
만일 불합격이라도 하게 되면,
후기 대학이나 전문대에 진학을 하거나..
아니면 재수..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휴... 지금 다시 생각을 해봐도, 후덜덜;;;
정말 피가 마르고 살이 떨릴 지경인데-
그래선지, 나는 꽤 오랫동안-
(심지어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도 가끔!)
학력고사 날에 갑자기 배탈이 났다거나,
정답을 밀려 썼다거나.. 하는 악몽을 꿨던 것 같다.
단 하루, 단 한번의 시험으로-
미래의 운명을 갈랐던 학력고사.
그러다보니, 학력고사를 치르는 당일의
수험생 컨디션은 너무나도 중요했고!!
(정말 순간의 컨디션이,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1년은 좌우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환경도-
오직 그날을 위해서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렇게, 쫄리는 마음으로-
수험생이 시험을 보러 들어가고 나면..
부모님들은 수험장 앞에서, 차마..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마치 벌을 서 듯이-
차가운 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을지니-
참으로 스산하고 살벌했던-
1990년. 12월의 기억. 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