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 박창수- 김귀정의 연이은 타살과
이에 항의하며, 무시무시한 공안 통치에 맞서-
연달아 분신했던 많은 열사들로..
엄청나게 불타올랐던 정권에 대한 규탄 시위는,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역습을 당하게 되는데..
그 시작은.. 조선일보에,
김지하 시인이 쓴 칼럼. 이었다.
세상에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니!!!
진보적인 인사라 믿었던, 그에 대해..
사람들은 엄청난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는데!!
(이후로, 그가 작사한 ‘타는 목마름으로’ 라는
민중가요를 사람들은 거의 부르지 않았다.)
이어서-
서강대의 박홍 총장도, 한 마디를 거들더니..
(대체 누가!! 분신을 강요할 수 있겠으며,
강요 받는다고 해서 분신을 할 수 있겠는가!!)
다음은, 외대를 방문한 정원식 총리에게..
학생들이 밀가루와 계란을 던진 사태. 였다.
정원식은..
총리가 되기 전에, 교육부장관을 역임하면서
전교조 대량 해고를 감행한 장본인이었는데..
(그 때는.. 실력 있고, 학생들이 좋아했던-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대부분..
전교조를 끝까지 지키다가 해직되었다.)
당시에 그가 대학을 찾는다는 것은,
알아서 죽여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고..
다분히 "자해공갈 쇼" 기질의 사건에,
조선 - 동아일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을 스승을 테러한 패륜아로 몰고 갔다.
이런 마타도어에,
전경들의 초강경 진압 작전까지, 영향을 받은
시위 인파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으로 쐬기를 박은 것은..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이었다.
강경대의 타살에 항의하면서 분신했던-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로,
강기훈이 구속돼서 복역했던 사건이었는데..
이런 엉성한 필적 감정을 무기로, 강기훈은..
동료의 분신을 사주하고, 유서까지 대필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ㅠㅠ
(이 조작의 당사자가 아마..
닭의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 이었다지!)
(똑같은 필적을 두고,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이렇게 다르다니! 대체 말이 되는가!! 버럭-)
2015년에 이르러서야, 강기훈은..
재심 끝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되는데!
이미 지나버린,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과
그 동안 극심한 마음 고생의 결과로-
암에 걸려 죽어가는 그의 고통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위로하고 보상해 줄 수 있을까 ㅠㅠ
아무튼, 그렇게-
뜨겁게 불타올랐던 민주화 운동은,
얼음장처럼 얼어붙게 되었고..
그것으로, 혁명으로 기록될 뻔(?!) 했던-
1991년의 봄은.. 지나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