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백기완 후보의 선거 운동을 하다가
엄마에게 들키면서, 내려졌던 외출 금지령이
간신히 해제되었던.. 1992년 연말.
당시에, 홍대 정문 바로 앞에-
“하바나” 라는 커피 전문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친구 연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그곳이 한동안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고..
마침,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남학생도
연이와 국민학교 동창으로 밝혀지면서..
"하바나"를 중심으로 모여들게 된,
우리 친구들과 남학생의 친구들이 자연스레-
서로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 중에 종현이가 있었다!
그 때 종현이는..
서울대에 가겠다고, 무려 3수를 하고 있으면서,
합격자 발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너무나도 안타깝게, 또 낙방을 했고-
후기로 성균관대에 합격을 했음에도,
진학을 할지.. 4수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깟 서울대에 왜 그렇게 목숨을 거냐고..
그냥 진학을 해서 대학 생활을 즐기라고..
내 나름의 조언과 위로를 해주면서,
종현이와 많이 가까워지게 되었고..
결국, 종현이가 진학을 선택하면서-
우리는,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
(내가 정식으로 사귄,
첫 번째 남자친구였다고 하겠다^^)
1학기 동안, 종현이는 나와 비슷하게-
원치 않던 전공보다는 학생운동 쪽으로 열심히!
활동하며, 대학 생활을 나름 즐기는 것 같더니..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지-
2학기는 휴학을 하고, 다시 4수에 도전을 했고..
또 낙방을 하자, 바로 군에 입대해버렸다. ㅠㅠ
그 시절, 서로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집 전화 뿐! 이었음에도..
참 열심히! 잘도 만났던 우리는, 그렇게-
종현이가 군대에 가면서, "이별" 하게 되었는데..
내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것은 절대! 아니었고,
맹세코 그것은 종현이의 선택!! 이었다.
불안한 미래에,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는-
오직 자신의 문제. 라고 종현이는 말했지만..
내심은, 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이해하면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마음이 너무 아파서..
꽤나 오랫동안,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겪은, 첫 번째 이별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것이 나와 종현이의
완전한 이별은 또 결코 아니었을지니-
종현이의 친 누나가 나의 학교 선배 언니였고,
나중에는 종현이보다 언니와 더 많이 친해졌기에-
언니를 매개로!!
우리는 서로의 소식을 잘 알 수밖에 없었고..
종현이가 제대를 하고 난 뒤에는 가끔-
서로 연락을 하면서, 종종- 만나기도 하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낮은 목소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종현이가, 자기도 영화를 하고 싶다면서-
영상원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는데..
그 말을 들은 내가 종현이에게..
야! 넌 내가 그렇게 좋아?
대학 시절, 학생운동부터 영화까지..
왜 자꾸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거야?!!
농담반, 진담반으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ㅎㅎ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영화 감독으로, 제작자로,
각자의 영화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내 오랜 친구, 종현아~
반드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 믿고!
언제, 어디서든.. 열심히 응원할께~!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