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백산맥> 촬영 중에 있었던,
몇 개의 재미난 일화가 생각났는데..
그 중에서 제일 유명했던 일화는,
"이 산이 아닌게벼~" 였다.
말 그대로, 촬영을 위해 전 스탭들이
차량도 다니지 못하는 깊은 산 속을..
그냥 맨 몸으로 올라가는 것만 해도 힘든데,
각종 장비와 소품들까지 이고, 지고, 들고..
정말 죽어라- 열심히 산을 타고 올라갔는데!!
제일 앞장서서 걸어가시던,
임권택 감독님과 정일성 촬영감독님이
갸우뚱- 하면서 걸음을 멈추시더니..
저기, 아무래도.. 이 산이 아닌게벼~
그러게... (먼산을 가리키며)
저기, 저 산인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길로, 전체 스탭들은..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산을 내려와서,
다른 산 쪽으로 다시 올라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고!!
이 때 나온, "이 산이 아닌게벼~" 라는 말은,
충무로를 뜨겁게 한 유행어로 등극했다!! ㅋ
<서편제> 때와 마찬가지로,
<태백산맥>도 완성된 대본이 없었는데..
그나마, 원작이 있어서 다행..
이라고 생각했다면, 완전 오산이었다.
한번은, 감독님이 마당에 쌓여있는
장작더미 소품을 보시고는..
이게, 어디 사람 허벅지 만한 장작이냐?!!
버럭- 화를 내셨다는 거다.
감독님이 하신 말씀을 전부 그대로 받아쓴,
그 날의 촬영 분량 어디에도-
장작의 굵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고 원작을 찾아봤더니.. 으악!!
소설 속에, '장정의 허벅지 만한 장작더미' 라고-
정확히 명시가 되어있더라는 거다. 후덜덜;;;;
결국, 감독님이 말씀해주신 촬영 분량 외에도,
무려 10권이나 되는 원작까지!!
줄줄- 외워서 꿰고 있어야 했을지니-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다! 먼저 꿰고 계셨던,
임권택 감독님께.. 다시금 경의와 존경의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고 하겠다! 짝짝짝~!!!
임권택 감독님의 연출부로,
오랫동안 일했던 선배들에게..
언젠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본도 없는데, 소품이나 의상 등의
촬영 준비는.. 도대체 어떻게 해?
지방에 내려가서는 못 구할 수도 있잖아.
그랬더니, 글쎄...
돌아온 답변인즉슨, 이러했다.
지방 촬영을 떠나기 전에, 예를 들어-
감독님이 "이번 촬영에선 한정식집에서 주인공이
누구랑 같이 밥먹는 장면을 찍을 거다" 라고 하시면,
먼저, 등장인물과 한정식집에 관련된-
모든 소품과 의상들을 다 준비해놓고..
혹시, 한정식집이 일식집이나
중국집으로 바뀔 지도 모른다는-
변경될 여지에 대한 모든 준비까지!!
미리 해서, 전부 다 트럭에 실어둔다는 거다.
흐미;;; 세상에나!!
그러니, 임권택 감독님 영화 현장에서
촬영을 준비해야 하는 스탭들은 항상-
일이 끝도 없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는, (다소 무식하게 느껴지는;;;)
그런 작업 방식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감독님 나름의, 스탭들에 대한 조련 방식!
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 내내-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일만 시키는 게 아니라,
정말 끝까지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영화 작업에, 정답은 없다.
그저 한정된 자원과 시간 안에서,
카메라에 담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뿐!
그 명징한 진리를,
감독님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