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마담 Oct 20. 2023

이화 메이퀸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땐 그랬지 #22.

대동제 때를 추억하다 보니,

이번에는 “메이퀸”이 생각났고..


“이대 메이퀸”에 대해서,

무수한 오해와 거짓들이 난무하는 것 같아서!!

그 진실을 한번 밝혀 보도록 하겠다. ^^ㅋ





‘5월의 여왕’ 이라는 뜻의 “메이퀸” 은,

이화여대가 한국에서의 시초이긴 했으나-

그 의미가 사뭇 달랐는데..


1908년에 열린 22회 이화학당 개교기념 축제에서

창립자였던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에게

꽃을 엮어 만든 관과 함께, "메이퀸"이라는-

칭호를 헌사한 것이 그 시초였기에..


"메이퀸"의 시작은,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학생들 중에서 "메이퀸"을 뽑았던 건,

1927년부터였는데..


이 때도 선정 기준은 성적, 품행, 신앙 등-

졸업 예정 학생들 중에서 우수한 학생을,

투표로 뽑는!! 대회를 만들었던 것이었고..


(흔히 생각하는, 미(美)의 기준이 아니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1933년부터 중단되었던,

메이퀸 대회는.. 개교 70주년이었던-

1956년에 다시 시작이 되었는데..


이 때에도, 자격 규정은..


“각 대학 각 학과 4년 급에서 (개신교) 신자로서
신앙이 돈독하며 성적과 품행이 우수하고
활동적이며 지도자격이 있는 대표적 인물.”


이런 기준으로, 각 과에서 한 명씩의!

메이퀸 후보자가 투표로 선출된 후!!


(특이한 점은, 선출된 후보자는..
기권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교수와 동창생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최종 투표를 거쳐,

최고 득표자가 "메이퀸으로 선출!!" 되었다.


따라서, 민주적인 투표의 결과였으므로!!

스스로의 의지와 비용으로 출전했던,

일반적인 미인대회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대관식까지도..

선출되었던 각 과의 퀸들까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의상은 한복에, 아악으로 연주를 했으니..

이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6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메이퀸 대회가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주목! 을 받게 되더니-


잡지에, 표지 모델로 등장을 하게 되기도 했고..

(대관식 때의 사진을 그냥 막 갖다 쓴 거였다;;;)





나중에는, 대관식 자체를 취재하기 위해서..

헬기까지 뜨고!!


구경을 하겠다고 몰려드는 인파에..

메이퀸의 옥좌가 무너지는 사태까지 발생!


이렇게, 사회적 관심이 과열되자-

동문과 재학생을 중심으로,

메이퀸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전체 과의 절반에 달하는 24개과가,

성 상품화와 평등권 위배를 들어-

과 퀸의 선발을 거부하면서..


1978년에, 메이퀸은 폐지! 되었다.




따라서, 메이퀸의 유구한 역사 속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 "메이퀸"이 존재했던 기간은,

겨우 10년 남짓. 아주 짧게! 존재했던 셈인데..


그것마저도,

선정의 기준과 방법이 전혀 달랐으니..


누가 과거에 이대 메이퀸이었다더라..

류의 ~ “카더라 통신”의 대부분은,

새빨간 거짓말! 이라고 할 수 있겠다. 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이화 대동제와 고대의 악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