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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 농성 중에 생겼던 황당한 일!

by 황마담


내가 총학생회 집행부였던, 1994년 당시에-

최고의 화두는, 단연 <우루과이 라운드> 였는데..


“쌀 개방만은 대통령직을 걸고 절대 막아 내겠다!”


굳게 약속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타결과 함께,

우리 농업은 사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건국 이래 최대의 농민대회부터-

연일 "쌀 개방 반대!" 를 외치는,

대규모 집회가 곳곳에서 열렸고..


(2008년 광우병 집회에 비견할 정도였는데-
다만 광우병 때는 평화적인 촛불을 들었다면,
그때는 탄압이 너무나도 심해서, 어쩔 수 없이꽃병 (화염병)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쿨럭;;;)


당연히 우리도 "해방이화 총학생회"의 깃발을 들고,

열심히! 모든 집회에 참석을 했었다!!


그러던 중,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데..


충정로에 새로 지어진 동아일보 신사옥.

그 정문 앞에서, 벌어졌던 일! 이었다.




그날은,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해 옹호하는

동아일보의 기사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며..


서부총련 소속 학생들 200-300명 정도가,

(서부총련은, 서울 서부 지역에 소재한
대학의 총학생회 연합으로.. 이대, 연대,
서강대, 홍대, 명지대 등이 포함 되었다.)


동아일보 신사옥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연좌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화장실이 너무 급해진 거다;;;


그래서 후배 한 명과 함께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출입이 막힌, 인근 건물들 사이를 좀 헤매다가..


결국, 지하철 역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왔으니-

분명!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진데..


다시 돌아와 보니.. 헉~!!!

글쎄..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황당했던지;;;

(그땐 정말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ㅠㅠ)


상황을 파악하고 보니-

그 짧은 사이에 닭장차 (경찰버스)가 와서,


연좌 농성을 하고 있던 학생들 모두를,

한꺼번에! 싸그리 연행해 갔던 거 였고!!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상황이긴 했지만;;;

괜스레- 죄책감에 괴롭기도 했던 나는,

바로 학교로 돌아와서..


남아있던 친구들과 학생처 선생님들과 함께!

경찰서로 잡혀간 친구들을 빼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학교에서 날밤을 꼴딱- 지새우게 되었는데..


(그때는, 연좌 농성만 하다가 잡혀가도-
도로교통법 위반, 집시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
등.. 최소한 5개 이상의 법 위반으로!
즉결 심판에 넘겨졌다;;;)


그 밤. 시간은 또 얼마나 더디게 가던지-

차라리 그냥, 나도 같이 잡혀갔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다음 날, 늦은 오후에-

잡혀갔던 친구들 모두가 훈방 조치되어 돌아왔는데,

그땐 또.. 얼마나 눈물나게 반가웠는지!! ㅎㅎㅎ


그리고는 같이 짜장면을 먹으면서,

잡혀갔다 온 친구들의 "경찰서 무용담"을 듣느라-

철없이 웃음꽃을 피웠던.. 기억도 난다. ㅋㅋㅋ




당시에, 친구들의 훈방을 위해서-

같이 밤을 지새우며, 너무나도 애써주셨던!!

학생처장님이 바로, 장상 선생님이셨는데..


보통은, 학생처장님과 총학생회 학생들의 관계가

절대!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리는 내내-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고!!


특히 장상 선생님은, 우리를 많이도 예뻐하면서

은근히- 응원까지 해 주셨었다. ^^


(집회를 하다가 잡혀간 친구들을,
빼내오는 일도 여러 번.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셨는데.. 장상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대부분 빨리! 쉽게!!
훈방 조치되어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중에 장상 선생님이.. 이대 총장을 거쳐,

총리 후보로- 청문회에서 난도질(?!)을 당하실 때-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었던 기억까지 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뜨거웠던 내 청춘의

빛났던 추억의 한 조각" 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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