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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 방화 사건의 피해자 가족!

by 황마담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기억하다 보니-


뒤늦게.. 1991년에-

대구 거성 나이트클럽 방화 사건으로,
사망했던.. 성환 오빠가 떠올랐다. ㅠㅠ



경북 경산의 황씨 집성촌에서-

큰할아버지의 손자이자, 아버지의 오촌 조카이자,

나에게는 육촌 오빠였던, 성환 오빠는..


뽀얀 얼굴에 금테 안경을 낀, 귀공자 풍의 외모에-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력공사에 다녔는데..


가끔 우리 집에 놀러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얘기도 잘 들어주고.. 했었기에, 어릴 때부터-

내가 많이 따르고 좋아했던.. 친척 오빠였다.




반듯한 성품에, 효자였던 성환 오빠는,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이쁜 딸아이가 태어나자, 새언니와 같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며-

고향이었던 경산으로 내려갔고..


그 날은, 대구 한전으로 발령을 받아서-

첫 출근을 하고, "환영회"를 했던 날이었다.


저녁 회식을 하고, 다 같이 나이트클럽으로-

2차를 갔던 모양인데.. 하필 거기서 불이 났고..


오빠는 먼저 불을 발견했음에도,

같이 있던 직장 동료들을 먼저 피신시키고..


화장실에 갔던 직원까지 찾아서 피신시키려다가,

정작.. 자기는 연기와 유독가스에 질식.


나이트클럽에 같이 갔던 직장 동료 중에서,

유일하게..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뉴스에서, 방화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완전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나중에, 거기에 성환 오빠가 있었고-
심지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정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ㅠㅠ


(이때부터 나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이 절대! 남의 일 같지도 않았거니와-

혹시, 나와 연관된 사람이 사건 현장에 있지는
않았을까.. 유심히 살피게 되었던 것 같다.)





한참 지나서, 그날의 사건을 밝혀보니-

방화의 시작은.. 그야말로, 별일도 아니었다.


방화범은, 옷차림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나이트클럽의 입장을 거부 당하자,

홧김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고..


삽시간에 불길이 솟아올라.. 무대와 커튼,

카펫 등이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타올랐는데..


그래도, 이때까지는.. 빨리 진압을 했더라면,

단순 방화 소동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손님들이 빠져나가기도 전에-

나이트클럽 종업원들이 먼저 달아나 버렸고..


그 중, 2-3명만 무대 쪽으로 돌아와-

화재를 알리고, 손님들을 대피시키려고 했는데..


문제는, 손님들이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대피 명령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심지어, 무대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서도-

'특수효과'로 착각해서, 더욱 "열광" 해버리면서..


당연히 대피는 늦어졌고,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도 너무 좁아서..


불은 20분 만에 진화됐지만, 피해는 커지면서-

어처구니 없는 화재는 참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 사고로.. 16명 사망. 13명 중화상.


(나이트 클럽 손님 100여명 중,
30%가 사상된 참사였다고 한다.)


방화범은 곧바로 도주했으나,

경비원에게 붙잡혀서, 경찰에 넘겨졌고..


방화 치사상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이 선고 되어서, 복역 중이며..


전원 스위치를 내린 종업원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 되었다고 하는데..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미 성환 오빠는 불의의 객이 되어 버렸고,

결혼한지 3년도 안된 새언니는 미망인이 되었으며,

돌도 안 된 딸아이는 아빠를 잃어버렸는데.. ㅠㅠ




그럼에도, 이런 비극적인 불행 중에서-

조금은, 다행스런 마음이 될 수 있었던 건..


몇 년 전, 설날에.. 아버지와 같이,

큰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을 했을 때.


놀랍게도!! 성환 오빠의 딸을 만나게 되었는데..

(새언니는 재혼을 했지만, 참 고맙게도-
명절 마다.. 딸은 꼭 보내온다고 했다.)


이미 장성한 그 아이는..

너무나도 이쁘고 반듯하게 잘 자라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


정말 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했는지.. ㅎㅎ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아이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던-

성환 오빠의 모습에.. 그만, 울컥! 하기도 했는데..


부디.. 그 아이가 언제 어디서든..

성환 오빠 몫까지, 두 배로 행복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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