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의 고향인 시골 마을에 가면-
국민학교가 있는 삼거리를 중심으로,
학교 뒤편에 큰 고모집과 고모네 과수원이 있었고..
학교 정면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와서 왼편에,
큰아버지의 집과 목공소가 있었고..
더 내려와서 샛길을 지나 개천을 따라 가다보면,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
왼편에, 할머니와 작은 아버지가 살던 집이 있었고..
할머니 집을 지나, 골목으로 좀 들어가면..
아버지의 사촌 형님이 하는 술도가와 집이 있었고..
술도가를 지나 더 올라가면,
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집이 있었다.
지금이야.. 개발을 하고, 발전이 되면서,
마을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고,
대부분 도시로 떠나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때까지는,
나름 집성촌을 이루며.. 한 동네에 일가친척들이
모두 옹기종기- 다 모여 살았던 것이다.
그 중에.. 이 사진의 배경이 되는 곳!
우리 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집인데..
커다란 한옥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으로 돼지 우리와 소 축사가 나란히 있었고,
오른편에는 개집과 닭 사육장이 있었으며,
정면으로 단독 문간방 건물 하나를 지나면,
ㅁ자 형태의 마당을 둘러싸고 집이 있었다.
거기엔 큰할아버지, 큰할머니를 비롯하여,
장손인 오촌 큰아버지 내외와 자식들까지..
3대가 살고 있었는데-
명절 때, 우리 가족들이 시골에 내려가면-
늘 무조건! 인사를 갔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사육되고 있었던 가축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럽고 냄새가 지독해서 너무 싫기도 했고-
여전히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른 채로,
한복을 입고 계셨던.. 백발의 큰할아버지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커가는 동안,
왜 여기에 계속 인사를 와야 하는지..?
아버지한테 불만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그 진짜 이유를..
5년 전의 설날에 비로소 알게 되고 나니,
갑자기 이 사진의 의미가 각별하게 느껴진다.
해방이 되고, 일본 미야자키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가족들이 처음으로 살았던 곳이,
바로 여기!!! 문간방이었던 것이다.
큰할아버지는 오갈데 없었던,
동생네 - 무려 9식구를 흔쾌히 받아주셨고-
동생이 죽고 나서-
제수씨가 독립해서 집을 얻어 나갈 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거둬주셨던, 정말 고마운 분이셨다.
현재는, 이 집도 흔적없이 사라졌고-
큰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아버지의 사촌 형님들까지 모두 돌아가셨지만-
(막내인, 사촌 동생 한 분만 살아계신다.)
아버지는 80을 훌쩍 넘긴 고령의 지금까지도,
집안의 장손인 조카의 집을 명절 때마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찾아가신다.
이는, 단지 제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깊은 고마움"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