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 운동의 한 자락에 동참하게 된 영광!

by 황마담


5년 전에, 내가 스티밋에 처음 작성했던-

<낮은 목소리> 제작 일지를 토대로,

오마이 뉴스에 기사가 작성 되었고..


그로 인해, 한국 여성영화 운동의 한 자락에

내가 동참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앞으로도, 기록을 계속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해본다. 불끈!!! ^^





오마이 뉴스에,
성하훈 기자가 작성했던 원문 중에서-
<낮은 목소리> 부분만 발췌해서 옮김.



▲ 바리터에서 활동했던 여성영화인들. 도성희, 서선영, 김소연, 김영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영화운동의 개척자 역할을 했던 바리터는 2년 정도의 활동을 이어가다 1991년 해산한다. 변영주는 "그즈음 정치적 분위기를 살펴보면,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정국이 경색됐고, 마침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됐다"면서 "도성희 감독 같은 경우는 집이나 사무실로 이상한 전화가 걸려오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사찰에 대한 공포감이 생겨 중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가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유학을 가거나 각자의 갈 길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바리터가 흩어지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소연(프로듀서, 영화사 무스칸)은 "1991년 취업을 했으나 일이 잘 안 맞아서 그만두고 8월쯤 다시 바리터 활동을 하고 싶어 찾아갔다"며 "변영주 등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얼마 있다가 각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선택하면서 1991년 9월쯤 발전적 해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소연은 "이후 변영주와 함께 푸른영상에서 활동했다"면서 "1993년 <낮은 목소리>를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변영주의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이 바리터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1995년 이후 <낮은 목소리> 제작에 참여한 황윤정(프로듀서)도 비록 '바리터'는 사라졌으나 그 정신이 변영주를 매개로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으로까지 이어져왔기에 <낮은 목소리> 작업을 하는 내내 '바리터' 출신 선배들인 김소영, 도성희, 홍효숙, 김영 등에게 지속적으로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영주는 "바리터의 역사나 정신은 당신 회원이었던 각자가 자신의 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한 것으로 기록영화제작소 보임도 그 일부분이지 바리터를 나 혼자 계승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푸른영상은 나와 김동원(감독), 장산곶매에서 활동했던 오기민(프로듀서) 등 세 사람이 함께 만들었다"며 "이후 신혜은(프로듀서)이 합류했고, 오기민(프로듀서)은 상업영화로 갔으며, 나는 <낮은 목소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극장 개봉을 목적으로 했기에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을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혜은은 이후 <낮은 목소리> 3부작을 비롯해 변영주의 모든 영화 프로듀서를 맡는다.


<낮은 목소리>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이 본격적으로 출범한 것은 1993년 6월이었다. 서초동 옥탑방에 사무실을 꾸린 변영주는 1993년 국제매춘에 관한 '아시아 보고서'인 다큐멘터리 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이어 <낮은 목소리> 3부작을 제작하며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를 스크린에 담는다.


<낮은 목소리>는 1980년대 말 본격화된 여성영화운동의 대표적 작품으로 영화적인 의미도 상당하다. <작은 풀에도 이름이 있으니>를 통해 사무직 여성노동자를 다루고 <전열>로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에 주목했던 여성영화운동이 빈민들의 보육 문제를 다룬 <우리네 아이들> 이후 <낮은 목소리>를 통해 일제 강점기 전쟁범죄인 종군 '위안부' 문제로 폭을 넓힌 것이기 때문이다.

▲ <낮은 목소리> 제작비 마련을 위해 기념품을 판매하는 황윤정 프로듀서 ⓒ 황윤정 제공


이화여대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황윤정(프로듀서, <후궁, 제왕의 첩>)이 영화운동에 합류하게 된 것도 <낮은 목소리> 제작 과정에서였다.


황윤정은 "대학 2학년이던 1992년 당시 변영주는 푸른영상에서 활동하며 아르바이트로 노래방에서 나오는 비디오나 대학가 축제(대동제)를 촬영하러 다니고 있었다"며 "이화여대 대동제도 변영주가 촬영을 와서 처음 보게 됐는데, 당시 선배들을 도와 총학생회 기획국 업무를 돕고 있을 때여서 촬영 조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진보정당이었던 민중당 청년학생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황윤정은 이후 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며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1993년 제작된 변영주의 첫 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교내 상영 등을 지원하고 동두촌 기지촌 활동도 연대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1993년 학회장을 맡은 데 이어 1994년에 총학생회 여성국장을 맡게 되면서 변영주의 작품 상영과 제작을 돕게 된다. 황윤정은 "<낮은 목소리>를 준비하고 있을 때라 제작비 모금 활동을 하고 기념품 판매, 특강 등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합류는 변영주에게 고충을 토로하러 찾아갔던 게 계기가 됐다. 1994년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인턴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나, 잘 맞지 않아 고민하던 과정에서 변영주에게 함께하자는 권유를 받게 된 것이다. 1995년 4월을 전후로 한 시점이었다.


"너무나도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다가 오랜만에 변영주 언니를 다시 만나 온갖 불평과 불만과 고민을 털어놨다. 한참을 가만히 들어주던 변영주가 갑자기 툭 던지듯이 '됐고, 그냥 때려 쳐! 뭐 그리 복잡하게 살아? 직장 생활이 뭐 별거 있어? 그냥 나한테 와! 같이 영화나 만들자!!'고 했다. 이 말에 잔잔하던 내 마음은 금세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킨 것이다.


평소 결심을 하기 힘들었지 한 번 마음 먹으면 바로 실행하는 성격이었다. 그 즉시 회사를 때려치우고 정식으로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에 입사를 하면서 <낮은 목소리> 작업에 투입된 거다. 이때 <낮은 목소리>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 막바지에 개봉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낮은 목소리2>를 제작에 들어가면서 1996년까지 프로듀서를 맡게 됐다."

▲ <낮은 목소리> 제작 당시 변영주 감독 ⓒ 기록영화제작소 보임(황윤정) 제공


<낮은 목소리>가 제작에 들어간 1993년은 다큐멘터리 투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을 때였다. 지금처럼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제 제자지원 사업 자체가 없던 시절이라 모금 운동이 제작비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변영주는 "당시 친구들의 신용카드를 빌리기도 하면서 제작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한 "스태프들이 다 모여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며 "차비가 없어 미아리 쪽에서 걸어오는 친구도 있었는데, 7명 정도가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식당에서 4인분을 시켜서 밥을 먹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낮은 목소리> 제작 때는 100피트 회원을 모집했다. 당시 필름으로 영화제작을 하던 시기였기에 100피트 가격에 해당하는 비용(10만 원) 모금을 위한 방편이었다. <낮은 목소리1> 때는 주로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모집했고, <낮은 목소리2>에는 안성기 배우와 배창호 감독 등이 참여해 후원했다.


황윤정은 "1996년 배창호 감독님을 찾아갔는데, 다행히 사무실에 계시던 감독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며 "좀 기다려 달라는 감독님의 말씀에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가 100피트 회원 가입을 받아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사무실을 나왔는데, 나중에 감독님이 당시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배창호 감독은 <러브스토리>(1996)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여성이 찾아와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는데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서 돈을 빌렸고 손에 쥐어서 보낼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황윤정은 "배창호 감독님이 특강이 있을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셨다고 여러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며 "아마도 감독님의 눈에는 철딱서니 없었던 나의 무모한 열정이 무척이나 예쁘게 보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배창호 감독은 "당시 크게 어려웠다고 할 수는 없고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고, 어렵게 찾아왔는데, 그냥 보낼 수 있었겠냐"며 "흔쾌한 마음으로 참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극장 개봉 최초 다규멘터리


<낮은 목소리>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하 <낮은 목소리1>)는 1995년 4월 29일 공식적으로 동숭아트센터와 피카소극장, 강남 뤼미에르 극장 등 3개 극장에서 일반개봉을 한다. 해방 이후 극장에서 개봉된 첫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했던 한편으로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개봉하겠다는 변영주의 뚝심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황윤정은 "실질적으로는 동숭아트센터에서만 개봉한 셈이라며 전단에는 피카소극장도 찍혀 있는데, 우여곡절 끝에 끝내 상영을 하지는 못했고, 강남의 뤼미에르극장은 관객이 한 명도 없던 상영이 몇 차례 있어 딱 3일 만에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는 영화 마니아를 중심으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뜻밖에도 1달이 넘는 장기 상영으로 이어졌고 무려 1만여 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으는 쾌거를 이뤘다"고 회상했다. 이어 "국내 외 유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뒤 추가 상영까지 하게 되면서 거의 매일 동숭아트센터로 가서 관객들을 만나 대화를 하고 배지 등 기념품을 팔았다"고 덧붙였다.


지방의 경우는 극장을 단 하나도 열지 못했다. 이에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은 서울개봉이 끝난 이후에 직접 보따리 장사처럼 전국을 돌며 유랑극단 식으로 상영을 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독립영화에서 활성화된 공동체 상영의 효시와도 같았다.


황윤정은 "전국 각지에 있는 대학의 총학생회와 연계해 출장 상영을 다녔는데, 차가 없어 고속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영화 필름과 소형 영사기까지 직접 챙겨 들고 전국을 순회했고 변영주의 특강은 패키지였다"면서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만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상영료에 기념품 판매 수익까지, 부족했던 제작비 보충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 <낮은 목소리> 제작현장 ⓒ 기록영화제작소 보임(황윤정) 제공


<낮은 목소리1>은 20여개 대학과 20개 해외영화제에서도 상영되면서 종군 '위안부' 문제를 고발했다. <낮은 목소리2>는 1997년 8월 23일, <낮은 목소리 3 : 숨결>은 2000년 3월 18일 각각 개봉했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일본의 전쟁 범죄인 종군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시킨다.


특히 일본에서의 상영은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낮은 목소리1>은 1995년 가을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오가와 신스케 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1996년 일본에서도 개봉을 한다. 해외에서 개봉된 첫 다큐멘터리로, 전쟁범죄의 가해자인 일본 사회에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파장도 컸다.


황윤정은 "<낮은 목소리> 개봉에 일본 우익들의 방해가 엄청나게 많았다"며 "현지의 영화 배급사였던 '판도라'에 상영중단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가 빗발쳤고, 심지어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던 도쿄의 박스 히가시 나카로 극장에서는 우익 단체의 청년이 갑자기 튀어나와 소화기를 분사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낮은 목소리>는 거의 두 달 가까이 도쿄와 후쿠오카, 오사카, 나고야 등을 순회하면서 많은 일본 관객들과 만난다. 그중에는 같이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사죄를 구하기까지 했던 선량한 일본 관객들도 무척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범죄에 대해 여성영화운동이 이뤄낸 큰 성과였다.


변영주는 "100피트 회원과 배지 판매 등으로 제작비를 모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빚을 지는 게 많았다"면서 "<낮은 목소리> 3부작의 전체 남은 빚은 <화차>(2012) 흥행에 따른 인센티브로 갚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은 2000년 여름 7년간의 활동을 정리한다. 변영주를 비롯해 황윤정(프로듀서) 신수연(프로듀서), 신혜은(프로듀서), 신명화(프로듀서), 장호준(조감독 겸 동시녹음), 김응택(촬영), 한종구, 김운영, 이정례, 류수진, 이우영, 김순영 등이 활동했고, 안소현(인디스페이스 사무국장)이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낮은 목소리> 3부작 외에 김소영 감독의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영화 <거류>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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