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전학을 했던-
6학년 2학기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내가 다녔던 유일한 학원은.. "LABO" 였다.
(너무 아쉽게도.. ‘LABO’ 때의 사진은,
내게 단 한 장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필름 카메라도 귀했던 시절이었고..
그나마 사진 작가가 꿈이었던 아버지가
찍어주지 않으면,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ㅠㅠ)
"LABO" 는..
영어로 노래와 춤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영어 공부를 하게 만드는 학원이었는데..
(당시에는, LABO가 전국 각지에 체인으로
많이 있었고.. 방학 때면, 전국 학원생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캠프까지 갔었다.)
그곳은, 학교나 연령대와 상관없이-
다양한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었던지라..
나도 참 편하고, 재미있게 느꼈던 것 같고-
특히, 추연구 - 연경 형제는 잊을 수가 없다.
나보다 2살 많았던 연구 오빠는..
상당히 조숙한 스타일이었는데-
(외모도.. 나이에 비해 조숙했다;;ㅋ)
가끔, 선생님이 다른 볼 일이 생기면-
대신 수업을 진행해 줄 정도로..
영어를 굉장히 잘 했고, 기타도 정말 잘 쳤다.
두어시간의 재밌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마무리를 겸한 간식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이 되면, 늘- 연구 오빠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양희은의 ‘작은 연못’이나 ‘상록수’,
트윈 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이나 ‘웨딩 케익’,
같은 노래들을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고-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받으면서, 그때부터-
포크 음악의 매력에도 풍덩- 빠질 수 있었다.
연구 오빠의 친 동생이었던 연경이는,
나보다 1살이 어렸는데..
귀공자 풍의 꽃미남으로-
여자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 당시에.. 내 학원 친구였던 은지가,
연경이를 너무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나는, 아직 이성에 대해-
감정적으로 발달이 덜 되었던지..
연경이 보다는, 연구 오빠로부터 받은..
문화적 충격에 더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한창 포크 음악에 빠져-
가요집 같은 걸 사서 보면서, 따라 부르느라..
혼자 흥얼거리고.. 했을 정도였으니^^
심지어, 통기타를 배우고 싶은 열망까지 있었으나-
(피아노를 배웠을 때의 악몽 때문에;;;;)
그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1주일에 두 번.
LABO에 가는 날만을 학수고대했던 내가..
어떻게? 왜?? LABO를 그만 두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연구오빠와 연경이도.. 소식이 궁금하고^^
여담으로, 연구오빠는..
대학 시절,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
한동안, 서로 연락을 하고 지냈었다^^
각자 다녔던 대학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마저도, 연구오빠가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고.. 이후로는 전혀.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
(때는 1992년. 그때까지도..
핸드폰이나 삐삐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도,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뭐든 잘했던 연구오빠와 언제나 멋졌던 연경이는,
변함없이 어디서든..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
우리의 인연이 아직 끝이 아니라면,
언젠가 그 때처럼…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