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일곱 번째 시
그대여 나를 잊어주소서
마른땅 위로 낙하하는 민들레로
주인 없는 거미줄에 걸린 낙엽으로
부디 나를 잊어주소서
그대여 나를 또 잊어주소서
일과를 마치고 잠시 벽에 기대어
노곤함을 녹였던 어느 해 질 녘의 단잠
기억도 꿈도 아닌 그저 순간이었던 것으로
그대 앞에 나는 항상 얼간이로
벗어날 수 없는 어제라는 늪으로
그대는 나아가고 나는 머물게 하소서
끊어지지 않는 실타래로 올가미를 만들고
피 흘리는 노을 앞에 뾰족한 기둥을 세워
나는 기꺼이 내 목에 그것을 걸어두고
신이시여 그대 뒤를 비추는 별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