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세 번째 시
적장의 목을 베자며 술잔을 들던 사내는
적장의 잔 위로 데워진 사케를 부었다
우리는 잔 위로 서린 이슬처럼 눈물을 떨어뜨리고
그동안 마약상은 얻어걸린 수익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사랑했던 연인들이 등 뒤로 돌아 노을이 되는 세상
부고가 실린 신문을 머리에 써 산성비를 피하고
불 꺼진 뜨거운 방으로 가는 너희들에게
누군가 모순의 창을 주기로 했다
창 속에는 또 하나의 모순이 숨어있고
그 모순 속에는 또 다른 창이 숨어있다
패잔병을 향해 킥킥대는 비열한 창병들은
반쯤 구멍 난 서로의 방패를 믿고 욕설을 내뱉었다
모두가 어떻게 살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는 동시에 이미 땅 속으로 향하고 있다
그녀에게 순수한 민들레 향기를 선물하는 나 역시
속으로 어떤 추잡한 욕정이 숨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