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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n 30. 2022

나물 파는 할머니

아흔세 번째 시

아가 밥은 먹었어

감기 걸리지 않게 따습게 입고 댕겨

안부전화 몇 통 드릴 여력 없는 이 한파 속에서

뱉어놓은 씹던 껌 자욱한 역사 안 시멘트 바닥부터

찬바람에 달아나는 흑색 펭귄들이 지나는 길목까지

아무 연고도 없으나 가족보다 자주 만나는

어느 할머니가 오늘도 나물을 파신다


저녁거리 걱정으로 한 푼

친정집 엄마 생각으로 한 푼

총 두 푼을 흥정하는 아주머니와

호박 송송 썰어놓은 따끈따끈한 된장찌개

시골에 홀로 계시는 늙은 어머니의 그리움을 덤으로

소주병 대신 꾸역꾸역 집어넣은 검은 봉지를 들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저씨

그리고 쭈글쭈글한 손으로 꾸깃꾸깃한 돈을 세가며

설날에 찾아올 손주 용돈을 미리 셈하는 할머니 사이에서

한파는 모두에게 늘 밉상이다


오늘 같이 이렇게 추운 날에는

얄미운 찬바람이 사정없이 할머니의 손등을 때려

큰 바구니를 들고 있는 손을 어리바리하게 만들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담아놓은 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절대 팔 수 없는 할머니의 소박한 마음이

나물 대신 바구니에 한가득 찬 걸 보면

온 세상에 따스한 함박눈이라도 내릴 듯 고요하고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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