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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l 08. 2022

왜 사람들은 '변희봉'을 볼 수 없을까

이장욱,『변희봉』

'변희봉' 속 숨겨진 익숙한 얼굴


변희봉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극 중 역할에 대한 몰입력이 어마어마하다. 그 때문에 그는 변희봉이 아니라 극 중 인물, 그 자체인 것 같다. '괴물', '공공의 적 2', '선생 김봉두', '더 게임' 등 그는 학교 이사장, 한글을 배우는 노인, 모자란 아들을 둔 아버지 등 몰입도 높은 연기로 늘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연기를 색깔로 표현하자면 한 두 가지의 색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매번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문학작품에 등장했다. 바로 이장욱 작가의 소설 <변희봉>에서.


<변희봉>은 주인공인 '만기'가 변희봉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술에 잔뜩 취한 그는 지하철역을 내려가다 변희봉을 만난다. 익숙한 낯에 아는 사람 인가 싶어 넙죽 절을 하는 그. 그 후에도 그는 시장에서도 생선장수가 되어있는 변희봉을 만난다. 그러나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변희봉을 만났다는 사실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 세계에서 '변희봉'이라는 인물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그는 여전히 변희봉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결말에서 만기의 아버지가 그에게 변희봉을 알고 있냐고 물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내 생각에는 이 소설에서의 '변희봉'은 '아버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술에 취해 지하철역을 내려가는 사람, 그 옆을 지나치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 생선을 파는 사람 등 수많은 아버지들의 모습을 '변희봉'이라는 인물로 표현한 것 같다. 실제로 변희봉이라는 배우가 주연보다 전반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많이 하시듯이, 이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부족한 자식들을 주인공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Photo By 괴물,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왜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변희봉'을 볼 수 없었을까. 나는 이것을 '부성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부성애를 볼 수 있지만, 실생활에서 부성애를 눈으로 직접 보기란 쉽지 않다. 감사한 마음, 죄송한 마음과 다르게 부성애란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다. 단순히 아버지가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비이성적, 비합리적이면서도 결코 비이성적, 비합리적이지 않은 사랑이다. 예를 들어, 사고가 났을 때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구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모성애와 부성애는 위대하다는 것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자식과 아버지 사이가 아닌 사람들에게 '변희봉'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감정과 달리 부성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공부 때문에, 회사 때문에, 결혼 때문에, 자녀 때문에.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어떤 계기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의 존재나 부성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또, 어렸을 때 아버지의 손을 주물러드렸던 나의 손이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손처럼 되어가듯이. 그리고 변희봉을 발견한 만기가 나이가 들면서 변희봉이 되어가듯이. 우리도 변희봉이 되어 자식의 미래를 고민할 때, 그때의 '그'는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비로소 그 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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