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굵고 묵직한 눈밭이 마당을 가득 메웠다. 이래서 군인들이 눈을 하얀 악마라고 하는구나. 나는 집 앞에 소복이 쌓인 눈을 마주 보며 곧장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길고 짧게 숨을 몰아쉬고, 양손으로 눈삽을 불끈 쥐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대략적으로 머릿속으로 작업 순서를 그리던 그때, 어머니가 급히 카디건을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 안돼, 치우지 마.
단호한 말과 다르게 어머니의 표정은 어딘가 머뭇거림이 묻어있었다. 사실 어머니는 매년 눈이 내릴 때마다 눈을 치우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 폭설 때, 어머니가 집 앞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 애초에 직장 때문에 시골집에 어머니를 홀로 둔 내 탓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눈소식이 들리자마자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어머니 집에서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어머니, 그러면 저번처럼 또 다치실 거예요.
조심스레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이해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삽을 들고 집 앞부터 눈을 쓸어 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하더니 다급히 말씀하셨다.
- 괜찮아, 치우지 않아도 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눈삽을 내려두고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얇은 카디건 하나만 걸친 어머니는 찬바람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어머니를 모시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리고 부엌 찬장에서 마실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내리고 있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전자가 삐-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민들레차 티백을 담은 컵 위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은은한 향이 방 전체에 퍼지고, 나는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차를 건넸다. 어머니 옆에 조용히 앉아 차 한 모금을 들이켜자, 향긋하게 퍼지는 민들레향이 얼었던 몸을 스르르 녹였다. 어머니도 조금 괜찮아지셨는지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께 말을 꺼내려고 입을 떼자,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알아, 왜 눈을 못 치우게 하는지, 그게 궁금한 거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거실 끝 작은 서랍장을 가리켰다. 어머니가 가리킨 서랍장을 열자, 삐걱- 낡은 나무 소리와 함께 손때 묻은 다이어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에게 그것을 전해드리자, 어머니는 한 페이지를 조심히 펼쳐 나에게 보여주었다.
안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눈사람을 사이에 두고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어머니가 적어둔 짧은 시 한 구절이 아련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차를 마시듯 단어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 네 아버지는... 다시 태어나면 눈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 나도 그렇고."
다음날, 눈은 전날보다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밖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무엇인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깨우고, 두꺼운 옷을 입혀 조심스레 손을 잡고 밖으로 모셨다. 어머니는 처음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폈고, 마침내 내가 만든 것을 보자마자 숨을 가쁘게 쉬며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눈사람이 서있었다. 마치 우리 아버지처럼.
- 엄마, 아버지 옆에서...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와 나는 활짝 웃으며 눈사람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따스하게 찾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눈사람이 되었다. 꽃향기가 물씬 나는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지만, 지난해 겨울이 아련히 떠올랐다. 아마도 나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쳤어요. 팔에 당신의 흔적이 남아있었죠. 모처럼 좋은 향의 비누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어요. 가볍게 체조를 하고 따뜻한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었죠. 커피 잔은 두 개였지만, 두 잔의 커피 모두 내가 마셔버렸어요.
밖을 나가보니 눈이 와있었어요. 집으로 나있는 발자국은 4개였지만, 집 밖으로 난 발자국은 분명 2개였어요. 내 신발에 차가운 눈이 붙지 않도록 누군가 먼저 발자국을 내준 모양이에요. 온 세상이 하얳어요. 나는 발자국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이 숲의 하루는 너무나 짧아요.
언젠가 다시 발자국이 돌아올 즈음, 따뜻한 모닥불에서 차를 나눠 마시고 따듯한 품 안에서 잠들 수 있겠지요. 만약 여기서 누가 울기라도 한다면 소중한 밤들이 금세 지나가겠죠. 다시 계절이 지나 나의 문을 두드려 주기를.
안녕, 나의 눈 사람
당신의 여행이 결코 길지 않길
_ 황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