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by 황만복

마을 청년회장이 숨을 헐떡이며 마을회관 문을 벌컥 열었다. 손에는 스무 페이지가 훌쩍 넘는 신문 한 부가 들려있었다. 하지만 굳이 페이지를 넘겨볼 필요도 없었다. 신문을 내려놓자마자 마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문 헤드라인에 익숙한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저 사람 얼마 전에 그 양반 아녀?"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기사 제목은 더욱 놀라웠다.


- OO건설 부회장을 구한 OO마을 사람들


며칠 전, 마을사람들은 복분자 수확으로 한창 바빴다. 마을농장에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던 그때, 울퉁불퉁한 산길 끝에서 고급승용차 한 대가 빛을 번쩍거리며 나타났다. 자동차는 요란하게 달려오더니 갑자기 휘청휘청 거리며 나무 한그루를 세게 들이받았다. 천둥 같은 큰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보니, 운전자는 에어백에 얼굴을 묻은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운전자는 에어백 때문에 크게 다치지 않았고, 마을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자동차에서 쉽게 나올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처음 보는 상황에 경찰이나 구급대를 부르려고 하자, 운전자는 "내 차 건들지 마. 이 거지새끼들아."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말투와 행동에서 술 냄새가 훅하고 풍겼지만, 마을 사람들은 일단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로 하고, 마을 회관에 눕혀 쉬게 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멀리서 까마귀 떼 같은 어둠이 찾아올 무렵, 이방인은 그제야 흐릿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비몽사몽 하는 그를 위해 마을사람들은 따뜻한 저녁거리를 내주고, 숙취에 도움 되라며 갓 갈아낸 복분자 주스까지 대령했다. 그러자 이방인은 정신을 차렸는지 마을 사람들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고급 승용차 여러 대가 마을회관 앞으로 줄지어 섰다.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정장 입은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잔해 한조각도 남김없이 주변을 정리했다. 마을을 떠나려는 이방인에게 마을 사람들은 답례품처럼 복분자를 한 보따리를 손에 쥐어주었고, 그는 "언젠가 반드시 신세를 갚겠습니다."라고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빠르게 사라졌다. 그런데 그가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부자였다니. 신문보도 이후 마을은 단숨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 많은 관광객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마을을 찾았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회장님 한상차림'. '회장님 애정주스' 등 다양한 것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복분자 농사로 버는 수익보다 훨씬 많은 수입이 마을 사람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태생부터 농사꾼이었던 마을사람들은 순식간에 장사꾼으로 전향했다. 그 때문일까. 한참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러나 그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었고, 가벼워지는 지갑만큼 마을 사람들의 근심이 늘었다. 그러나 수확시기를 놓친 복분자는 이미 썩은 줄기만 남았고, 씨앗도 뿌리지 않아 다음 해 농사까지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을사람들끼리 누가 '회장님 레시피'의 원조인지 크게 다툼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마을농장과 회관을 찾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평생 살았던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한편, 이방인이 속한 건설회사는 그 사건 이후 이미지 쇄신에 성공하여 주가가 크게 뛰었다고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꽃과 벌들이 날아다니는 곳. 산들을. 강들을. 나무들을. 파괴하고. 불 지르고. 밀어버리고. 사람 키보다 몇 십배. 몇 백배하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세우고. 부수고. 얼싸안고.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다가. 제일 먼저 덩어리를 세운 사람은 제일 먼저 떠나 뒤에서 웃는다. 다시 콘크리트 덩어리를 파괴하고. 불 지르고. 밀어버려도. 꽃과 벌 같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 파괴하고. 불 지르고. 밀어버려도. 사람값보다 몇천 배. 몇억 배하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세우고. 그 아래 풀 몇 포기를 심는다. 하지만 그 위로 꽃과 벌. 꽃과 벌 같은 아이들도 날지도. 뛰어놀지 못한다. 그러면서 지들끼리 얼싸안고.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운다.


_ 황만복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