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산성)

제34회 <성남사랑 글짓기> 운문부문 일반부 장원

by 황만복

새벽 별도 잠들지 않은 이른 하루

낡은 구두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오늘도 집을 나서고

달그림자가 존재를 드러낼 때서야

힘없이 바닥에 끌리는 밑창 소리가 비로소 메아리쳤다.


아버지ㅡ

당신은 큰 돌을 우두커니 짊어지는 사람

집 앞에 질척거리는 진흙 밭이

내가 당신의 키만큼 자랐을 즈음에는

크고 작은 돌들로 촘촘히 길을 내었다.


해가 지난 달력과 떨어진 대나무로

방패연을 만들어주던 그때 당신 손은

분명 물까치 꽁지처럼 빛이 났었는데


길 위에 쌓은 돌이 늘어날수록

내가 그 돌을 무심히 밟고 걸을수록

당신의 손도 그 돌처럼 투박하고 거칠어졌다.




2025년이 지나고 새로운 해가 떴다. 돌이켜보면 2025년도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환하게 웃었던 날보다 얼굴을 찡그리며 괴로워했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 문제가 닥칠 때마다 나는 여전히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유유히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보다는 바람에 맞서 수없이 쓰러지는 이름 모를 잡초에 가까웠다. 아름다운 꽃들도 가을을 지나 낙엽처럼 지고, 봄이 되어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밤하늘에 별 대신 셀 수없이 많은 걱정으로 수를 놓았다. 그러나 그 한숨은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결국 헛되이 마음만 낭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득히 멀어지는 봄날을 바라보며 좌절을 거듭하고 있을 때, 다행히 겨울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았다. 얼어붙은 땅 속에는 나와 같은 씨앗들이 수없이 묻혀있고,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며 따스한 봄날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해였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여러 도전을 시도했다. 대부분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때때로 상상도 못한 경험들이 뜻밖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34회 성남사랑 글짓기였다. 우연히 백일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굳게 닫아두었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우아한 날개를 펼치는 백조 같은 학생들과 학부모 사이에서 나는 뜬금없이 나타난 까마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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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해진 시간 동안 시 한 편을 써 내려가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고심 끝에 초고를 쓰고 여러 번 퇴고한 뒤, 제공받은 원고지에 시를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결국 반절 남짓밖에 채우지 못한 원고지를 제출하며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입상 소식을 전해받고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해졌다. 내가 장원이라니.


지난 38년간 걸어온 걸음을 돌이켜보면 웃음보다 한숨이 먼저 새어 나온다. 오랫동안 키우던 꿈들은 밤하늘의 별이 아니라 어둠에 더 가까웠고, 짧아지는 하루 속에서 알 수 없는 내일은 늘 두려웠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가끔은 낯선 경험이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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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가 밝았다. 30대를 보내는 마지막 한 해다. 즐거운 것보다 괴로운 것들이 많아 또다시 나를 흔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과정 속에서 후회와 걱정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에 대한 작은 기대를 품고 잠을 이루는 여유도 남았으면 좋겠다. 또, 어제의 나를 대견해하고, 오늘의 나에게 감사하며, 내일의 나를 따뜻하게 격려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아버지의 손(산성) - 원본


새벽 별도 잠들지 않은 이른 하루

낡은 구두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오늘도 집을 나서고

달그림자가 존재를 드러낼 때서야

힘없이 바닥에 끌리는 밑창 소리가 비로소 메아리쳤다


아버지ㅡ

당신은 큰 돌을 우두커니 짊어지는 사람

집 앞에 질척거리는 진흙 밭이

내가 당신의 키만큼 자랐을 즈음에는

크고 작은 돌들로 촘촘히 길을 내었다


해가 지난 달력과 떨어진 대나무로

방패연을 만들어주던 그때 당신의 손은

분명 물까치 꽁지처럼 빛이 났었는데


길 위에 쌓은 돌이 늘어날수록

내가 그 돌을 무심히 밟고 걸을수록

당신의 손도 그 돌처럼 투박하고 거칠어졌다


아버지ㅡ

이것이 얼마나 고단한 의미일까 의심할 때쯤

당신의 세월 속에서 당신은 이미 이름을 잃고


아버지ㅡ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인가 괴로워할 때쯤

나의 세월 속에서 당신은 이미 보이지 않네


당신이 쌓은 돌들 위에 싹이 자라고

그것들이 자라 나무가 되기 전에

돌 뒤에 돌들이 쌓여 그렇게 산성이 된다


새벽별을 향해 떠나

달그림자로 돌아오던 당신을 닮아

내 손도 기꺼이 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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