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경험 중인 세상 모든 퇴사인을 응원하며
시작이란 게 참 어렵다. 사회생활에서의 ‘공백’이 생기면 말이다.
1년 6개월 하고도 보름 전 이야기다. 나는 철저한 무(無) 계획으로 퇴사를 강행했다. 이런 결정은 생애 처음이었다. 성격을 구분 짓는 MBTI에서 판단형 J 성향을 지녔다. 꼼꼼한 계획을 세우고, 그게 틀어지면 초조했던 나다.
주변인 모두는 하나같이 ‘왜’냐고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그냥”. 다만 그 두 글자를 뱉어낼 때마다 내 머릿속엔 수많은 과거 기억이 스쳤다. 표정은 아마 씁쓸했을 터다. 회사를 나가며 여러 쓴소리를 들었다. 주로 조언, 걱정, 핀잔의 소리였다. 부러움을 표하는 이도 있었다.
아무렴 어떤 반응도 괜찮았다. 나는 나를 믿었고, 두려움 보단 기대가 더 컸다. 그때 결정에 점수를 준다면, 5점 만점에 4점을 주겠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여러 도전을 했다. 책을 썼고, 배우고 싶은 분야를 세 가지나 깊이 공부했다. 사람, 장소, 반려닭 등 새로운 것들을 내 삶에 들였다. 풍부해졌다. ‘만족’했다. 1점을 깎은 사유는 내 통장 잔고가 ‘부족’해진 탓이다.
하지만 만족스러움과는 별개로, 난 뒤늦게 폭풍전야를 경험 중이다. 경력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 같이 똑같았다. 눈썹과 눈동자를 치켜세우곤 나를 응시하는 면접관의 예리한 눈빛.
퇴사 전과 후 날아오는 질문이 똑같다는 게 흥미로웠다. ‘왜’냐고 물었다. 질문이 온당하다곤 생각한다. 퇴사 전과 달라진 것은 그 물음에 “그냥”이라고 짧게 답할 수 없단 사실이었다. 경력 사이 생긴 미씽 링크를 메우기 위해, 나는 충분한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현직에 있는 경력자들 못지않게 일할 자신이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흐르는 불리한 공기는 어쩔 수 없었다. 기분 탓일 수도.
분명 내 삶은 풍부해졌는데, 이력서 안의 나는 그대로 멈춰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아, 물론 내가 아주 뛰어난 인재였다면 또 다른 전개로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거울 속 내 표정은 조금은 씁쓸하다. 새로운 시작이 참 어렵게 느껴지는 시기에 있어서다. 하지만 내 삶의 공백은 분명 메꿔졌기에, 어떤 기회든 다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