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사는 나무여~ / 도시 빌딩 숲에 둘러 쌓인 느티나무 이야기...
천년을 사는 나무여~(4.21.목. 회색 빌딩 숲속의 느티나무)...
나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
이곳 성복동에 심어졌습니다...
그 옛날 먼 옛날...
버섯송이같은 작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시절...
분홍빛 복사꽃, 하얀 배꽃이 이 언저리 저 언저리 꽃대궐을 이루고...
새소리 정겨우며...
냇물소리 청명하던 계절에...
어린아이 크기만한 나를...
어느 마음씨 좋은 촌로가 냇가에 정성껏심었었지요...
그 노인은 그 옛날 돌아갔는데...
나는 이렇게 오래도록 크게 자라 오늘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60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으니...
참 오랜 시간이 지나갔네요...
그시절...
내가 제법커서 냇가에 그늘을 드리울 즈음이면...
동네 아낙네들이 빨래 함지박을 한가득 이고와...
웃고 떠들며 빨래하던 정겨운 모습들 지켜보는 것이 참으로 좋았었습니다...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되네요...
그 세월동안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내게로 와 그네도 타도 나를 오르며 놀았습니다...
그들이 커서 시집 장가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말 기뻤습니다...
모두들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지만...
정겨움만큼은 넘쳤었지요...
알콩달콩 아들딸 잘 낳고 사는 모습...
아버지 엄마되어 평화로이 살며 나이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한세월 다 보내고...
병들어 주검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덤덤히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내들의 삶과 함께 했던...
꽃피는 봄날...
한여름 내 아래 모여들어 더위와 비를 피하던 그 많은 날들...
누런 단풍 떨굴 때즈음...
정겨운 들녁에서 추수하던 그 가을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던 추운 밤...
개울건너 장지문으로 불빛이 배어나오던 그 살갑던 겨울들...
모두모두 잊을 수가 없지요...
긴세월 살면서...
험한 꼴도 많이 보았습니다...
왜놈들이 쳐들어와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온 천지가 난리가 났었던 때도 있었고...
또 세월지나...
구한말 그 일본놈들이 이 아름다운 강산을 제것으로 만들어 노략질하던 때...
반세기도 안지나...
같은 말을 쓰는 같은 옷을 입은 남북 사람들이...
피비릿내나게 싸우고 죽이고 하던 보지못할 광경도 보았지요...
바로 내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 세월동안...
나도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았지요...
세상 난리통에...
베이질 운명도 격고...
총포탄에 여기저기 찟기우기도 하며...
모진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그 세월만큼...
이곳저곳에...
상흔이 남았지만...
뭐 자랑이랴싶어...
안으로 안으로 보듬었을 뿐이지요...
나죽어 베어져 넘어지면 볼 수 있을 듯...
이제는 요지경 세상이 되었는데...
인간들은 편리하고 풍족하여 좋은 세상이라고 하데요...
글쎄요...
내가 보기에...
참 각박한 세상이다 싶습니다...
기계의 힘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들더군요...
내 시선이 머무르던 양지바른 좋은 자리...
푸르렀던 나의 벗들이 세상하직하며 베어져 팽겨쳐지고...
높은 아파트라고 하는 성낭곽같은 회색건물이 빽빽히 들어서...
사람들이 들어차 바글바글하며...
소리도 요란스러운 자동차라고 하는 괴물을 타고다니며 밤낮없이 불을 토해내니...
눈이 멀고 귀가 멀 지경입니다...
내가 먹는 물도...
예전처럼 맑고 깨끗하지 않고...
내가 마시는 공기도 그렇지요...
오래사는 것이 죄악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바로옆에 높은 복합상가가 들어선다하여...
발파작업에...
무엇을 박는지 두들겨 박고...
파고 뒤집고...
생난리니...
그 세월 참고참고 잘 버텨왔는데...
이제 나도 한계에 다다른 듯하군요...
많이 늙고 병들어...
이제 내몸도 내몸이 아닙니다...
썩고 패어나간 곳에...
모양은 좋을지 모르지만 덕지덕지 쳐넣어...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데...
숨쉬가 더욱 힘들고...
얼마나 내 뿌리를 다지고 밟아놨는지...
오금을 펼 수도 없어...
긴 한숨만 나올밖에요...
그러나...
그 많은 세월동안 보아왔던...
또 그 봄이 왔습니다...
작년에 열심으로 공들여 키워왔던...
겨울눈이 그 노고에 보상을 해주듯...
연초록 새싹을 틔워내니...
내가 봐도 내가 대단하여...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래서 또 굳굳이 살아갈 의지가 생기는군요...
이제 늙으니...
조용한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정리할 시간이지요...
저기 걸어오는 저 상노인네...
내 뿌리가 자기 의자지요...
검버섯이 피어난 얼굴을 보아하니...
저 세상이 가까운 듯한데...
꼭 요맘때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산책을 나와...
지나치지 않고 내 아래 앉아서...
숨을 돌리며 촛점잃은 눈으로 회색건물을 쳐다보다가...
가끔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요...
그래서...
이 동네 늙은이들을 모두 내 동무삼았습니다...
내 나이가 지들보다 훨씬 많지만...
다들 반말을 하데요...
그들은 내가 손짓해서 연초록잎을 흔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좋은 모양입니다...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며 올려다보는 것이...
저 친구나...
나나...
한세상 잘 살았습니다...
꿈같은 잠깐의 세월같기도 하고...
빙둘러...
고층 아파트로 둘러쌓여...
힘들게 살아가는...
느티나무...
느티나무옆 개울가...
철새에서 텃새로 변한 청둥오리같지요...
산림청에서 2000년 접어들며...
향후 1000년을 대표할 나무를 선정하는 품평회에서...
당당히 장원을 차지한...
'밀레니엄 트리'...
600여년을 쉽지않게 살아왔는데...
오른쪽에 높은 복합상가가 들어선다고...
파고 헤집고...
두들여 박고...
생난리니...
그렇지 않아도 요지경속인데...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리들은...
물고기보다는...
수초들의 뿌리들을 먹는다지요...
옛날이 그립지만...
하룻밤의 꿈같은 지난날...
지난해 정성드려 가꿔온...
겨울눈이...
찬란한 연초록 잎을 틔우니...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네요...
굳건히 살아갈 의지도 생기고...
'모두들 다~ 내게로 오시요! 힘들고 고단하거든 내게로 와 기대어 쉬시요!'...
보이지않는 물속에서...
열심히 물을 젓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여도...
열심히 저어야 됩니다...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