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12.8.목. 한 그루의 공존)

한 그루 나무에 그 나이만큼이나 한동체로 함께 하는 공존 이야기

1000m급 고지대 백두대간 줄기에는

천년을 살고 있는 '신갈나무'가 여럿 있습니다.

그래서 숲속의 제왕이라고 하지요.


1000여개의 도토리에서 커다란 나무로 자라날 확률은 대략 1/1000

들짐승, 날짐승, 두발 짐승이 물어 가고 가져 가고

일부는 태생적으로 부실하여 썩어 가며...


어렵게 싹을 틔웠다고 해도

엄중한 숲에서 어린 삶을 영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변 침엽수들의 매서운 눈초리는 그렇다치고

여타 활엽수들이 독차지해버린 볕으로 인해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서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하지요.

그래서 수년간의 자람도 보잘 것 없습니다.


뿌리를 뻗기도 여의치 않지요.

기존의 어른 나무들 뿌리들이 이리저리 얼켜있어

가냘픈 뿌리를 내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처지와 환경을 처연히 받아들이고

굳건하게 어린 신갈나무의 소임을 다하지요.

신갈나무 도토리에는 특별한 유전자가 들어 있으니까요.

'멀리 보고 천천히'라는 유전자


빛을 향한 한해 한해 변변찮은 자람을 하다가

어느날 웃자람 속에서 자신만의 형질을 발휘하여

도도한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백년이 흐르도록 고고하게

숲을 내려다보며 의연함을 과시하지요.

그 신갈나무가 내려다 보이는 어느 곳에도

그보다 튼실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천년을 살고 있는 우람한 신갈나무

그 태생때부터 간직한 뿌리와 줄기가 천년이 넘은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래 밑둥은 천년전 그 어린 줄기가 변하고 변하고 변하여 굳건해 진 것이고

흙속의 보이지 않는 뿌리 또한 그러할 것이지요.

결국, 나무 제일 위 꼭대기, 올해 나온 여린 가지는 지난해 부터 세월을 거슬러 천년여의

나무의 삶위에 오늘의 새 가지가 돋아난 것입니다.


천년전의 그 밑둥과 오늘의 새 가지가 공존하는 나무 한 그루

참으로 위대한 존재이지요.


왕성한 생태적 발육이 있는 위쪽의 가지에 비해

아래의 볼품없이 쪼개지고 갈라진 밑둥은 할머니의 젖주머니마냥 생명을 잃은 듯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듯이

새 가지, 새싹, 꽃들의 든든한 버팀이 되어주는 위대한 일을 하지요.


우리네 부모님들과 비견된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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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도토리가 뿌리를 내리고

떡잎이었던 도토리가 껍데기를 벗어젖히고 있습니다.

미래의 '숲속의 제왕'으로 자랄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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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제왕의 삶치고는
시작이 미미합니다.

열매는 겨울을 나기 전에 씨앗을 틔우지만 어미는 모든 것을 미리 정해두었다.
지상에서 겨울을 보내지 않고 지하에서 겨울을 나게 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아예 지상으로는 아무것도 내지않는 것이다.
어미는 연한 떡잎조직이 지상으로 나갈 필요조차 없이

튼튼한 껍질로 무장된 떡잎으로 겨울을 나도록 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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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떨어진 도토리
그 커다란 도토리에서
겨울이 오기전에 뿌리를 내어 땅속에 깊게 터를 잡아
겨울을 나고
올해
뿌리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껍질안의 떡잎의 후원으로
싹을 내어 가느다란 줄기를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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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나무로 부터
3m남짓
주변의 우람한 나무들이
숨조이듯
하늘을 막고
경사지의 얇은 흙으로 몸 추스르기
위태위태하지만
하늘을 향한 열정으로
올곧은 줄기와 함께 의지의 잎사귀를 피워냈습니다.
그리고
숲속의 제왕으로 커갈 1000년의 꿈을 꿉니다.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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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앞으로 살아갈 밑천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란 어미가 껍질속에 채워준 탄수화물 덩어리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양의 떫고 딱딱한 물질이 삶의 밑천이다.
하지만 열매들은 정작 그 속에 작게 포개진 위대한 생명력에 대해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 작은 뱃속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얼마나 무궁한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지 아직 모른다.
곧 이 위대한 유산은 열매의 생을 지배할 것이다.

제일 먼저 뿌리가 껍질의 틈을 비집고 조심스레 생의 첫무대, 흙 속으로 뻗어나온다.
어린 뿌리가 나온 후 열매는 다시 조용하다.
제법 긴 시간이다.
뿌리를 내는 일이 힘겨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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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잎사귀
그리고 도토리 깍정이(각두)
깍정이가 너덜너덜하게 털이 많이 난 것은
참나무 6형제중 상수리, 굴참, 떨갈나무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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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파충류가

물위에서 봄을 토해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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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같은 이성'이라 했나요?

평온한 호수 수면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이성

그래도

감성이 없는 이성은

삭막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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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깊이만한

물의 깊이

그래서 더 푸르러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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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새순이 돋아날 즈음

꽃잎이 물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지요.

꽃의 황홀한 잔치는 10일홍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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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가을날

수백년은 됐을 법한

거대한 신갈나무를 알현합니다.

우람합니다.

훌륭합니다.

존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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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초 백두대간 식생탐사중
소백산 1000m급 산자락에서 만난 수령이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우람한 "신갈나무"
안개비와 어울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네요.


숲은 나무가 있어 대접을 받는다.
신갈나무가 있음으로 해서 작은 당단풍나무도, 철쭉도, 여러 들꽃들도 가치를 가진다.
숲은 웅장한 나무로 인해 가치를 얻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이 반드시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한때 관심이 곧 파괴로 이어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사람들이 현명함을 찾아가고 생물이 가지는 생명성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다.

그렇지, 변화란 누구도 빗겨 가지 않는 것.
신갈나무는 자신의 주변에서 맹렬하게 도전해 오는 젊은 나무들을 이미 감지하고 있다.
그리 놀랍거나 괘씸하다는 생각은 없다.
바로 자신이 살아온 모습이 아닌가.
자신이 소나무를 밀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보라 저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도 내가 일구었다.
고집스러운 소나무 낙엽도 내가 녹여 내었다.
저토록 윤기 흐르는 흙은 얼마나 많은 내 일부를 담고 있는가.
내 넉넉한 품은 바람을 막아 주었고 물을 가두었다.
내가 이룬 흙이 아닌들 저들은 어찌 싹을 낼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나방은 내 수액에서 목마름을 해결했고 다람쥐는 내 품에서 겨울잠을 잤다.
혹벌은 내 이파리를 터전 삼았고 겨우살이는 아예 내가지를 제 것으로 했다.

나 역시 저토록 맹렬했던가.
내가 뻗은 가지에 누구는 빛을 포기했어야 했겠지.
다만 신갈나무는 또 다른 신갈나무의 도전에 직면해 있음이 소나무와 다를 뿐이다.
그는 소나무를 몰아냈는데, 소나무는 결코 그를 몰아낼 기회를 갖지 못한다.
신갈나무는 다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고, 봄이 오고, 봄이 오고...
신갈나무는 생명체로서 오래 살았다.
몸속의 동심원들은 이미 백여 개를 넘었다.
헤아리는 것조차 부질없어 보인다.

정지한 시간도 이제 퇴색해 간다.
세상의 무릇 살아있는 것들 중 100퍼센트 효율을 가지는 동력체계는 없다.
필요불가결하게 쓰레기 즉 엔트로피를 발생시킨다.
나무도 마찬가지여서 몸에는 이제 노폐물도 쌓이고 묵은 찌꺼기도 쌓인다.
그 쓰레기를 먹고사는 새로운 매개자들이 시간을 갉아먹는다.
힘도 떨어지고 기운도 예전 같지 않다.
해마다 피어나는 신록이 있지만 과거의 흔적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
이파리를 달고 있는 가지 아래에는 긴 세월의 곁가지들이 남아 퇴색되어 있다.
과거는 화려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짐밖에 되지 않는다.
누추한 존재들이다.
생산은 없이 수고로움만 요구하는 존재들이다.
먼 거리는 저항의 발생을 높인다.
긴 수송체계는 효율을 떨어뜨린다.

연금보조도 끊어진 가지에는 어느덧 저승꽃이 피어난다.
원하지 않았지만 부러진 가지에는 어느새 버섯도 피어난다.
신갈나무가 있는 숲에는 유난히 버섯이 많이 돋는다.
낙엽이나 낙지, 뿌리 등 그만큼 많은 양분들이 숲으로 떨어진다는 의미이겠다.
축축한 밑동은 이미 쓰러짐을 예고하듯 군데군데 뜯겨 있다.
곧 돌아갈 시간이 닥쳐올 것이다.

하나의 도토리에서 시작된 나무의 긴 시간이 이제 끝에 다다라있다.
어미로부터 떨어져 나와 하나의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어미가 되어

수많은 열매를 생산하고 퍼뜨려 그가 태어난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나무는 어쩌면 하나의 사건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줄기는 나무 중의 으뜸 참나무의 자손이다.
어느 정도의 바람으로는 어림도 없다.

상처로 찢어진 밑동은 곧 그의 생에 결정타를 날릴 것이다.
물기의 드나듦은 조직을 와해시킨다.
와해된 조직은 미세한 벌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곧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독과 같이 미세한 벌레들이 나무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돌아다닐 것이며

그 틈새로 다시 물이 차고 갈라진다.
결국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미세한 벌레와 물의 협공이다.

나무의 쓰러짐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빛이 쏟아지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또 나무의 그늘에 안식처를 마련했던 작은 들풀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무참하게 짓이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나무는 위대했다.
인내했던 나무들은 큰 품으로 다시 채워 오른다.
쓰러진 나뭇등걸은 무수한 생명들이 일시에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보통 때에는 그냥 썩어질 씨앗들이 잠깐 동안의 영화를 꿈꾸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끼가 피어오르고 버섯이 피어오른다.
벌레가 줄기 속으로 길을 내고 물이 채워진다.

그저 흙속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이거늘, 이처럼 단순하고 명쾌한 순리가 어디 있는가.
땅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 다음 세대를 위해 자양분으로 돌아가는 일.
미련이 있을 수 없다.
죽는 일이란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속성이 아닌가.
죽는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불변하는 성질이다.

나무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생명활동을 해 왔지만 죽음 앞에 절대 번민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있기에,

사람처럼 복잡한 절차와 형식을 가지지도 않고 죽음 앞에 부산스러움도 없다.

그저 살아가는 활동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죽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산을 헤집고 다니는 수고도 필요하지 않으며 특별한 무덤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주저앉은 그 자리가 바로 무덤이요 저승이다.
새로운 방문자들이 결코 두렵거나 원망스럽지 않고

그들의 출현을 오히려 간절히 원하는 것이 나무의 마지막 소원이다.
자신이 썩어지지 않고 온전히 남아 화석이 된다 한들 이미 죽은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나무의 지난 역사는 땅속으로 분해되고 다시 나무로 피어난다.
그것이 동족이든 살았을 때의 경쟁상대였든,

삶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똑같은 자격으로 분해되고 보충되는 역사이다.
애초에 생명의 본질은 그래서 하나였고 또한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신갈나무에게 진정한 휴식은 이제부터이다.
어미 몸에서 떨어져 나온 순간부터 한순간도 생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무에게 휴식이란 곧 사라짐을 의미한다.
숨쉬는 것에서 양분을 모으고 물기를 가두고 양식을 만들고 잎을 피우고

잎을 떨어뜨리고 눈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고
나무는 부지런함 그 자체이다.
살고 있는 동안은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 지켜야 하는 의무였다.

신갈나무가 쓰러진 자리는 자양분이 넘치는 풍요의 땅이요 은혜의 땅이다.
이처럼 큰 영광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신갈나무가 쓰러진 자리에는 갑작스러운 부산함으로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리도 지긋지긋하던 나무좀벌레나 곰팡이나 세균들에게 이제는 운명을 맡겨야 한다.
이제 온전한 생태계의 역할을 해내는 시간이다.

신갈나무는 참으로 행운아였다.
사람들에 의해 몸뚱이가 송두리째 잘려 나가는 불행도 겪지 않았다.
사람들의 성가신 간섭에서도 자유로웠다.
오히려 숲의 주인이라는, 전에 없던 영광스러운 명예도 주어졌다.
도심이 아닌 산이라는 터전은 미래를 보장해 주었다.
그는 나무로서 최고의 영광, 천수를 누렸다.

신갈나무는 식물인간, 식물국회 등등의 말에 무척 가슴이 아프다.
식물처럼 처절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어디 있을까.
또 식물만큼 훌륭히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생물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식물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발상이다.
아니, 지독한 동물 중심적 발상에서 오는 편견이다.
이 지구상에서 신갈나무가 사라지는 날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신갈나무가 썩어 흩어진 자리에 작은 씨앗 하나가 날아와 박혔다.
소나무 씨앗이다.
자연의 순서는 처음으로 돌아왔다.
하늘이 열려 빛이 쏟아지는, 나무가 쓰러진 땅에 소나무가 개척자처럼 들어온 것이다.

차윤정님의 “신갈나무 투쟁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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