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의 미덕 / 숲속 인문학
감나무
함민복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 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거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감꽃
올해도 감꽃이 피었다.
감꽃은 새로 나온 감 이파리가 햇살하고 내통한 뒤 뱉어놓은 비밀스런 이야기 같다.
햇살에도 빛깔이 있을까?
누가 묻는다면 나는 감꽃을 주워들고 보여줄지 모른다.
왜 감꽃은 하나같이 꽃잎 끝부분이 살짝 접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 연한 발가락이거나 부리 같아서,
어린 부리와 부리가 화창한 날 뽀뽀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어린 날, 감나무 아래 서서 입을 벌리고 감꽃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떫고 시큼하고 약간은 달큼한 그 맛 때문이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도 아니다.
감꽃으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드는 일도 여러 차례 해봐서 지겨워질 때쯤이었을 것이다.
왠지 그렇게 감꽃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추락하는 것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지만 나는 한 번도 감꽃을 입으로 받지 못했다.
그때 내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햇살, 초록, 연노랑, 하늘, 새소리…
그래, 그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닐까?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까닭 없이 이루어져 세상의 소금이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감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 한 편. 단 넉 줄로 된 김준태 시인의 ‘감꽃’이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시는 역시 반성하기 좋은 양식이다.
먼 훗날에 과연 당신은 무엇을 셀 것인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0078.html(한겨례 신문)
5월 어느날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감
감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릴적 감꽃을 실에 역어서 목에 걸고 놀던 아련한 기억
꽃이 있는 듯, 없는 듯 작지만
그러나 분명히 소임을 다하는 꽃이 있습니다.
우리네 민초처럼...
꽃 핀지
한달여
어른 엄지 손가락마디 크기...
벌써
감 모양을 갖춰가네요.
한 여름이던 8월
작년이어 올해도 커다란 감이 주렁주렁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감상하시는 어머니
"나는 가을 단풍드는 감나무며, 추운 겨울 삭혀먹는 홍시가 좋더라"
그리고 10월의 어느날
단감나무에
80여개의 감이 여전하지요.
올해 제대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추위에 약해서 매년 가지가 동사했었는데,
어머니께서 기특해 하시네요.
그리고
겨울 양식, 김장을 마칠 때즈음
까치밥으로 서너개를 남겨두고
감을 수확하셨습니다.
나무에 향기가 있다면, 아니 모든 나무는 향기가 있겠지요.
사람들의 향기가 각기 다르듯이...
계수나무, 비목나무, 초피나무 처럼 대표적인 방향 나무가 있지만,
다른 나무들도 고유의 향기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둔하여 모를뿐...
가을하면 생각나는 나무, 우리에게 친근한 나무, 누런 들녁지나 산자락 마을,
가을 햇살에 빛나는 감나무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
정감이 어리는 풍광에 넋을 잃고 삿되어 가는 마음을 추스리지요.
이런 감나무의 향기는 '추억'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잊혀진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영상의 향기...
어린시절, 감나무 아래서 감꽃 목걸이 만들어 걸고 놀던 시절,
푸르렀던 그 시절...
많은 인연들이 머리를 스쳐지나 갑니다.
소꼽동무 친구들, 친척 누나들, 그리고 할머니...
어느 가을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추억,
모두 어디 가고 없어 가슴이 먹먹한 달착지근한 옛일이군요.
우리때보다 더 못먹고 못살던 시절...
땡감, 떫은 감을 침내려 자기 키보다 더 큰 지게에 얹고,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내 건너
동무들 부끄러운 학교앞에 가서 팔아, 보리 사다 밥해먹었다는 서글픈 추억도 있습니다.
감나무는 추위에 약하여,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지요.
나무의 수세도 균형감있고 멋스러워 바라만 보아도 좋지만 나무가지 줄기가 약하며,
가지가 찢어지는 일이 빈번하여 옛부터 감나무 오르지 않토록 아이들 단속을 하였답니다.
귀한 자손 잃을까봐...
풍성한 감을 열고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하기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감나무가
그래서 약할 수 있겠다 싶군요.
그러나 어머니 살갖만큼이나 겉거죽이 거치른 감나무지만 어머니보다 오래 살 것입니다.
주홍빛 풍성한 감을 한아름 열고 울긋불긋 잎사귀 아름다움이 이 가을에 가득할 때면,
한 없는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팍팍한 객지생활하는 자식은 산너머 들지나 양지바른 뒷뜰 장독대 뒤, 감나무 한 그루와
홀로 고향 지키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겠지요.
그 고향의 어머니는 철마다 때마다 이른 새벽 정한수 떠놓고 달빛아래 자식 잘 되기를 빌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 찬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한겨울 식량인 김장을 시작하지요.
그 김장하는 모습을 내려다 보며 감나무는 또 한살이를 마감합니다.
어머니는 어렵게 내려온 자식들 위해 잘 익은 감을 따내려 실어 보내고
달빛 아래 주홍빛 감 빛날 때 늦은 저녁을 드시겠지요.
이제 몇개 남지 않은 감처럼, 어머니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많던 감을 다 따내려도 윗가지에 잘 익은 몇개를 남겨 두시는 모습에서
날짐승을 위한 '까치밥'이라고도 하지만, 어머니는 자기삶에 대한 애증이라고 하시겠지요.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
여기저기 썩어내려 금방 무너져 내릴 듯하지만
올해도 그 늙은 가지에 풍성히 감을 열고 단풍으로 물들며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 어머니처럼...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
BAND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http://band.us/#!/band/61605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