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7.25.수. 고개숙인 개망초 이야기)
동남아 캄보디아에서 어린 나이에 강원도 정선으로 시집와, 초등생 남매 잘 키우고 50대 남편 수발에 시어머니 모시며 살고 있는 아낙이 있습니다.
진산이 엄마는 캄보디아에서 배울만큼 배웠지만 어려운 형편으로 아픈 아버지 병원비와 정신지체자 언니 생활비 마련을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지요.
우리나라 말을 농담 섞어가며 하는 유쾌한 아낙임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코로나 유행으로 캄보디아 집에 못 가는 슬픔에는 몸이 수척해질 정도로 많이 슬퍼했습니다.
휴양림 객실 청소 용역팀에서 궂은 일을 하는 진산이 엄마
시간이 지나 밝은 모습을 회복하여 여느 때처럼 유쾌한 아침 인사를 주고 받지요.
한여름 성수기 객실과 캠핑장 운영 등 많은 래방객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바쁠 때, 비와 땀 범벅으로 청소도구와 쓰레기 봉투를 들고 야영데크에서 힘들게 올라오며 수건 동여맨 머리로 꾸뻑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고귀한 희생을 하는 감내하는 역락없는 한국 아낙이었습니다.
주변의 관심과 배려로 국제결혼한 분들이 현실에 적응하여 정붙이고 살고 있는 '인간극장'이 있듯, 우리 땅에 들어와서 잘 살고 있는 식물들이 있지요.
고개숙인 개망초
안녕하세요!
한 여름인 요즈음 들녘과 산자락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저의 개망초 동료들을 쉽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흔하여 관심들을 안 주지만 군락으로 피어나는 저희는 외국에서 온 귀화식물로
이곳저곳 파헤쳐지고 허물어진 곳에 내려앉아 벌거벗은 땅을 위로하며 흐드러지게 피어나
상처를 덮고 있습니다.
눈물을 대신하여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꽃 빛깔이 눈물 빛인 노란색이고 그 주위에 위로의 색인 하얀 꽃잎을 달고 있습니다.
작지만 시적이고 철학적인 꽃으로 상처받은 대지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동료 개망초 꽃들이 꼿꼿히 하늘을 우러르며 염원하듯 하는데
무리중에 유독 고개숙인 개망초 꽃인 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위로 향한 다른 꽃들과는 반대로 땅을 향하여 힘없이 고개를 숙인 제 모습이 처연해 보이기까지 하다는군요.
저도 다른 꽃처럼 보란듯 하늘 향해 꽃잎 벌려 화사한 햇살 받으며 벌 나비를 유혹하고 싶지만
제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초여름 어느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피워 내 마음의 봄을 맞이한 듯 삶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곤충 한쌍이 날아 들었습니다.
남색초원하늘소 부부
한참을 꽃잎에 앉아서 머뭇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더군요.
"저~ 꽃님이시여~ 저에게 깃든 새 생명을 맡길 곳을 찾고 있는데 개망초님께서
제게 그 요람을 빌려 주시면 안될까요?"
가만히 듣고 있자니 무척이나 무섭고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저의 목숨을 달라는 것이었으니까요.
말인즉슨
저의 몸 줄기를 오려서 그 속에 남색초원하늘소 자기의 알을 낳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가 제 몸 줄기속 부드러운 하얀 대공을 갈가먹으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땅속에서 번데기로 한 겨울을 지내고 나서 다음해에 남색초원하늘소 어른벌레로 탈바꿈한다는
엄청난 이야기였지요.
온몸이 부르르 떨려 꽃잎이 흔들리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남색초원하늘소 이야기는 계속되는데
"개망초님의 몸은 꽃피었다 죽어가지만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잉태하여 또 다른 삶으로 이어져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움직이고 날아다닐 수 있는 생명체..."
그렇게 이 남색초원하늘소 부부는 제게 몇날 몇일을 머물며 끈질기게 설득을 하는 것이었지요.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용납이 되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라 무시하려했으나
많은 다른 꽃들을 찾아 다녔다는 얘기며 이제 곧 알을 낳아야 할 때라
암컷의 처지가 딱해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이제 꽃도 피워봤고 짧지만 세상의 화사한 삶도 살아봤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지요.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듯
저의 꽃망울을 쳐다보는 남색초원하늘소 부부의 눈빛이 더욱 애처로워 보이기에 그만 허락을 하고 나니
더욱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줄기가 따꼼따꼼해오네요.
남색초원하늘소가 제 줄기를 돌아가며 씹어서 흠집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후회도 되네요.
남들처럼 허락을 않을 것을...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혼미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는 정신줄을 놓았지요.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곳
천상의 세계
꽃의 요정들이 저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저 하늘 아래 내 육신 개망초
연초록이 빛바래 갈색으로 변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처연한 모습 끔찍했지요.
그러나 그 줄기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는 모습, 참으로 대견하고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따뜻한 봄날 내 육신의 개망초가 시들었던 곳의 땅이 움틀되더니
번데기 속에서 청명한 남색의 하늘소가 날개돋이를 하더군요
와~ 감동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푸른 창공으로 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온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비록 나는 죽었지만
나로 인하여 새로운 생명이 내 대신 살아간다는 사실
감사한 일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존중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산이 엄마를 응원하며 개망초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