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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Jul 14. 2021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7.14.수. 능소화 이야기)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 능소화와 소나무 storytelling


최진사댁 울타리에는 매년 초여름이면 아름다운 양반꽃,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곤 했습니다.

진사님댁 능소화는 그 풍성함과 새색시 볼닮은 꽃 빛깔로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최진사는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에 능소화를 늘 자랑스러워 했고 능소화가 담밖으로 유출되지 않토록

단속을 하곤 했지요. 


어느해

한무리의 능소화 무리중에서 소화라는 아름다운 꽃이 다른 꽃과 달리 멀리 앞산 자락을 바라보며

물가 절벽위 커다란 나무를 동경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저 나무 위에 올라 더 넓은 세상 구경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해 가을

소화는 간절한 소원을 이뤄

바람결에 씨앗 몽우리가 날려서 절벽 소나무 아래 떨어져 이듬해 싹을 틔우게 되었지요.

"안녕하셔요! 멋진 소나무님! 저는 저 아래 마을에서 온 소화라고 합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 높은 곳에 고운 분께서 어찌 오르셨소? 척박한 곳이라 많이 힘들꺼요!" 


그렇게 소화의 역동적인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나무 말마따나 절벽 바위위는 삶을 이어가기가 참 힘들었지만

내가 결정한 삶이라 모진 비바람과 북풍한설을 참아내며 간신히 연명할 수 있었지요.

성장속도가 너무도 느리니 꽃을 피울 엄두를 못내었고 소나무를 의지해 타고 오르다보니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게 신경쓸 필요 없소! 외롭고 쓸쓸한 삶이었는데 함께 살아갈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오!" 


소나무 이름은 장송이라 했다.

앞의 선대들이 그랬듯이 '가난한 시인묵객으로, 유가의 고뇌하는 철학자처럼' 그렇게 살며

삶이 무미건조해질 때 즈음 소화가 찾아 왔던 것이지요.

소나무 장송이도 전과는 달리 많이 고무된 삶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소화가 소나무를 잘 타고 자라게 하기 위해 소나무가 내뿜는 배타적인 물질인 방향물질 방출을 자제하였으며

잘 타고 오르도록 가지 뻗는 것도 억제하며 소화에게 희생적이 되었지요.

그리고

소나무 장송이는 소화의 자람이 남달라 소화의 방향물질(성장억제 물질)을 받아들여야 해서 힘겹고 고통스러웠지만

소화가 자기에게 의지해 아름답게 커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어느덧

능소화 소화는 소나무 장송 키를 훌쩍 넘겨 자라며 멀리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요.

"참으로 멋진 세상이군요! 감사합니다. 장송님!"

"소화님이 좋으시면 저는 만족합니다."

소나무 장송의 목소리는 진심어린 듯했지만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

소화의 풍성함으로 인해 장송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영양분도 부족했고

햇볕도 부족했으며

본의는 아니겠지만

장송을 견제하는 소화의 방향물질로 많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수형이 아름답고

잎의 푸르름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소나무 장송

푸르른 빛깔도 퇴색되어 누렇게 되었고

절제하여 가지를 내다보니 수형도 아름답지 않게 되었지요.
그래도

소나무 장송은 행복했습니다.

능소화 소화의 삶의 방식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어느

화창한 여름날

소화는 많은 꽃송이를 피워내며 이 세상을 찬미하였습니다.

주변의 많은 나무들과 동물들이 부러워하는 가운데

저 멀리 최진사댁 울타리 능소화들도 그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소나무 장송은 행복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희생한다는 것이 이렇게 보람되고 아름다운 것임에 감사했지요. 


이제

소나무 장송이 벼랑 아래 흐르는 물을 바라봅니다.

원래의 내모습은 어디가고 새로운 모습의 장송

"소화님! 어떠셨소? 그대의 삶이..."

"소나무님 덕분에 마음의 눈이 넓어진 듯합니다. 그런데 장송님! 어디 아프신가요?"

"사실, 소화님을 더 는 못볼 듯하오! 아니 우리의 뜻깊은 삶은 여기까지인듯 합니다." 


그제야

소화는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고

자기의 자람과 꽃피움을 위해 소나무 장송이 많은 희생을 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날 밤

둥근 보름달이 소화와 장송을 비추는 한밤중

반딧불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소나무 장송과 소화는

바위위 아랫 밑둥이 부러지면서 절벽아래 물속으로 떨어져 내렸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도반을 잃은

숲에서는

이 둘의 자기희생적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해

후대에 까지 흐뭇한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지요.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

BAND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http://band.us/#!/band/6160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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